수선:화

by 개미철학가

발바닥에 물집이 찢어져 따갑습니다.

다들 자리를 잡고 술한잔 시작했을텐데, 나는 대학을 들어가고도 생일이 빠르다는 이유로 뒷풀이 장소에 함께 입장을 할 수 없었습니다.


자리가 어느 정도 무르익었을 때가 되어서야 슬쩍 들어와 도둑처럼 자리할 수 있었습니다. 무언가 불안정하게. 불청객처럼


생각해보면 제일 불편하고 불평스러운 건 나일텐데, 먼저 자리한 그들의 흥을 깨는 건 아닐지 그들이 불편할까봐 있는 듯 없는 듯 나를 지우려 노력했습니다.


그 소외조차 기뻣던 존재. 자투리 같은 것이더라도 혼자인 내가 다수에 속해 있다는 것. 그곳에 나도 한자리 차지 하고 있다는 것. 그런 것만으로도 기뻣던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연민의 의미라도 그런 기다림으로라도 그곳에 있는 것이 간곡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어차피 외롭지만 나자신이 아닌 타인의 존재를 바라볼 수 있다는게 기뻣습니다. 관심의 속성이 빛이 아니라도 좋았습니다.


밤은 또 깊어갑니다. 깊게 잠긴 것들은 더 검어져서 칠흑이 되어가고 환한 것들은 또 반짝여서 저마다 평화롭습니다.


“20년쯤 지난 뒤에 사람들에게 풍경으로 기억되는 겁니다.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지 하는 구체적인 기억은 아니지만 ‘그래 그곳에 그 사람이 있었지. 지금은 여기에 그 사람이 없으니 어쩐지 쓸쓸하네.’하고 오고가는 대화속 잠시 빈 공간이 생겼을때, 한두문장을 자리할 수 있는 존재 말입니다.”


하잘 것 없는 지나가는 풍경 따위의 존재라면 충분합니다. 배경같은 사람이면 충분합니다.



다리가 부러진 의자들, 사람의 손길에 사용감에 여기저기 홈이 파지고 뜯겨진 책상면, 유행에 지나 버려진 오래된 장식장, 여기저기 필요에 따라 덧대지고 고쳐져서 원형을 알아볼 수 없는 작업대.


오늘 손봐야할 작업물들입니다. 새로운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설래이는 작업이라면, 빛바랜 목제품들을 수선해는 일은 시간을 어루만지는 위로의 작업입니다.


너무 오래 손길이 닿지 않은 것들에 다시 길을 트기가 어렵고 세월이 흐르면서 누적된 것들은 의외로 힘이 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업의 첫 시작점을 정하기가 까다롭습니다. 낡은 것을 한꺼번에 걷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소목수로 일하기 전 오랫동안 사람을 마음을 다루고 섬기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내 마음에 균열을 발견했고 그 균열로 인해 타인을 바라보는 일을 더이상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두개의 직업은 그 대상이 다르지만 닮은 점이 있습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