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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쎄미 Aug 14. 2020

열렬하게 질척거려주기를

나는 <동물농장>을 보며 힐링한다는 말에 적극 동하는 사람이.


아일랜드에서 좋았던 점은 한국에서 보기 힘든 종류의 개들을 다양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나에게 먼저 놀자며 짝폴짝 오면 더할 나위 없었다.


하루는 어둑어둑 해가 지고 있어 슬슬 약간 무섭다고 느끼던 길에서였다.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그 빠르기에 지레 신이 난 생명체가 아왔다. 꼬리를 팔랑팔랑 흔들며 '뛸 거야? 뛰려고? 같이 뛸까?'라고 말하는 듯이 앞 발로 내 다리를 콩콩 건드렸다. 주인 할아버지는 마냥 해맑은 개를 보며 한숨을 푹 쉬고 말했다. "한번 나오면 만나는 모든 사람들하고 다 인사해야 해서 산책 시간이 엄청 오래 걸려요." 나에게는 잘 된 일이었다.


또 다른 하루는 비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어디선가 가볍고 발랄한 발소리가 타다다닥 들려왔다. 그리고 이내 빠르게 가까워져 그 경쾌한 소리를 내던 진흙투성이 발로 내 까만 외투에 선명한 도장을 찍어버렸다. 차마 그녀의 속도를 따라집지 못한 주인 아주머니가 뒤에서 외쳤다. "안돼! 밀리! 스탑!" 하지만 밀리는 들은 척 만 척 내 앞에서 푸드드득 물기까지 털어제꼈다. 주머니 밀리 대신 연신 사과했지만 정작 밀리는 미안함 마음이 단 0.1도 없어 보였다. 덕분에 밀리의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귀를 주물러 볼 수 있었으니 밑지는 장사는 아니었다. 이 귀여운 흙 자국은 어차피 곧 비에 씻겨나갈 것이었다. 리고 이렇게 열렬히 내가 좋다는데 뭐가 대수랴.


그 후로도 밀리는 계속 신이 나서 걸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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