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찢었다

예술가의 모습

by 김앤트

표출과 표현은 다르다.


예술가의 특이함, 감성, 광기, 히스테리 같은 감정 부분에 대해 풀어본다.


서적이나 방송 등 여러 종류의 미디어에서, 미술사에 남을 만한 위인들의 일화나 예술가의 삶을 그릴 때 가끔 등장하는 씬들이 있다.


창작의 고통받는 예술가의 장면들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으니, 감정이 뒤틀리며 나오는 모습들이다.


머리를 쥐어뜯는다.

고개를 젖히며 소리를 지른다.

자학과 자해를 일삼는다.

주변에 물건을 던지고, 책상을 양팔로 쓸어내며 다 떨군다.

거울을 주먹으로 깨서 금 간 유리에 비친 자기 모습을 바라본다

작품을 구겨 쓰레기통에 던졌는데, 들어가지 않으며 밖에까지 가득 쌓여있다.

작품을 찢고 밟아서 가루로 만들고 싶어 한다.

주변과 소통이 잘 안된다.


그러다 역작이 탄생한다.


이 일화들로 천재성을 더 부각하며 괴팍함조차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한 정당성으로 포장된다.


창작의 고통

미술을 하기 전부터 흔히 얘기하는 그 모습들을 흔하게 간접적으로 접해왔다.


‘예술가는 원래 저렇구나’

‘저런 성향을 보여야, 예술가가 될 수 있는 거구나’


일반 사람들이 쉽게 표출할 수 없는. 광기의 점점 가득 차는 일화들을 들어오며.


‘얼마나 자기 작품에 몰입하고 집중해야 저렇게 될 수 있을까?’

경이롭고 멋있다는 느낌을 가득 받았다.


영향을 받게 되면 따라 하게 된다.


미술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창작의 고통을 심각하게 느끼거나 몰입해 있지 않은데도, 조금만 안되면 내재하고 있던 예술가의 이미지를 괜히 똑같이 재현해 보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직접 해보니 표출 방법도 다양하다.


카리스마 넘치게 단호하게 찢어 버리기

지우개로 마구 휘두르며 부분적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감상하다 구기기

화판째로 부수려다 생각보다 단단한 강도에 포기하기


디테일을 조금 더 살려본다.

연필로 천천히 힘주어 긋다가, 그러데이션 분노로 점점 빨라지며 종이에 구멍이 뚫리면, 화판까지 긋는다.

연필이 부러지면 멍하니 바라보다 더 화가 나서, 집게로 집혀있는 종이를 그대로 뜯어서 구겨 던진다.

화판에는 연필 자국과 집게에 찢어진 종잇조각들만 남아있다.


그림을 시작하고 1년 차 안에 일어난 충동적인 행동들이다.


왠지 그래야만 해소가 될 것 같고, 그렇게 성장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나의 마음을 누가 알아줬으면 하는 심리도 담겨있지만, 기믹에 가까웠기 때문에 남들 앞에선 부끄러워 한 번도 시전 하지 않고 방구석에서만 했다.


그런데 실제로 한 학년 위에 선배가 화장실 유리를 정권으로 깨고, 그림 그리는 손을 크게 다쳐 입시 시험을 제대로 못 치르는 사태를 보았다.

선배가 그림에 정말 진심이고 잘 그렸냐 하면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얼마나 답답하고 잘 안되면 저렇게까지 할까?'라는 생각과 ‘입시가 잘 안될 것 같으니, 변명거리를 만들고 싶어서 유리를 깨고 손을 다쳤나?’라는 생각들이 교차했던 기억이 난다.


구기고 파괴하는 이런 행위들이, 스스로 컨트롤이 안 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임을 은연중에 계속 느끼고 있었지만 부정하고 싶었다.


나는 예술가가 될 거니까.


220130인물.jpg 김앤트, 이끌음, 37.2x27.2cm, Charcoal 22 min, 2022


그런 생각들이 바뀌게 된 이유가 있다.

무협 소설에서 읽은 내용들 때문이다.


가만히 있어도 살기를 풀풀 풍기는 캐릭터들이 있다.

상대방은 그 모습을 보면 지레 겁먹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정도면 일반인들 입장에서 굉장한 고수라 할 수 있지만, 사실 어설픈 상태인 경우가 많다.


정말 고수 반열로 올라가게 될수록, 그 살기들이 몸 안쪽으로 모두 갈무리되기 시작한다.

최고수는 겉으로 봐서 무공을 익힌 건지 모를 정도로 평범해진다.


평범해지면 평소에 시비가 많이 걸릴 것 같지만, 그 살기를 마음대로 제어할 수 있기에 적재적소에 사용하며 불필요한 분란을 잠재우는 모습들이 표현된다.


이런 내용들을 읽으면서 그림에 대입해 보기 시작했다.


잘되지 않는다고 화를 밖으로 표출하는 것은, 어설프고 덜 익은 상태의 행동임을 인지했다.

생각해 보면 화내고 파괴해도 달라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계속 같은자리에서 돌고 있기만 할 뿐 역작이 탄생하는 것도 아니었다.

설령 그 모습을 보고 누가 알아준다고 해서 그림은 잘 그려지지 않는다.


감정이 시원하게 해소되지도 않는다.

가끔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후회만 남을 뿐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뭐가 잘 안되는지 분석해 보고 개선하며 실험해 나가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그리고 그림은 고쳐가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굉장히 많다.


작업실 다니시는 분들도 잘 안 그려지면 새로운 종이에 다시 시작하려고 하거나, 깨끗하게 지우고 다시 그리려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종이 상태를 보고 내구성이 많이 깎여있지 않으면, 그림을 수정해 나가는 방향으로 진행한다.


다시 시작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


망했다는 생각이 들면 그 부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상태에서 개선할 수 있는 방향은 없는지 찾아보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그 부분을 찾지 못하면 같은 경우가 발생했을 때, 또 새로 그리는 선택을 하게 된다.


개선을 해나갈수록 ‘망했다’라는 개념이 사라질 것이다.

그것 또한 하나의 방법으로 진행해 나갈 수 있는 과정임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다시 한다 해도 기대치만큼 더 좋아지지 않는다.

실수도 실력의 범주 안에 있기 때문이다.


재시작으로 얻을 수 있는 결과는 현재 할 수 있는 능력에서 조금 가감될 뿐이다.

등급이 바뀔 정도의 향상은 단기간에 이뤄지지 않는다.


개선 방향을 잡아 연습하지 않으면 우연의 효과가 적용돼도 더 높은 수준으로 도달할 수 없다.

만에 하나 도달해도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히스테리 한 과정으로 만들어진 역작이 가능한 이유는, 미술의 특수성 때문이다.

스토리 텔링으로 보완할 수 있을지언정, 개인적으로는 높은 수준이라 판단하지 않는다.


다른 분야로 바꿔 생각해 보자.


회사에서 워드를 작성 하다 잘 안돼서 키보드를 내리쳤다.

노래하다 안 불러지자, 고함과 비명을 지른다.

홈페이지를 만들다 코드가 꼬여 컴퓨터를 꺼버린다.

중량을 들다 무거워서 원판을 던졌다.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영감을 중시하고 표현의 규정이 없는 미술의 특성상, 예시의 오류라 생각할 수 있다.

영감은 운과 같다.


연습 되지 않으면 영감을 받아도 제대로 적용하지 못한다.


분석해 가며 한 단계씩 올라가는 입장에서 보면, 영감에 의지하고 느낌 비중이 큰 표출적 행동은 깊어 보이지 않는다.


표출과 표현은 확실히 다르다.


표출은 있는 그대로 상태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표현은 설득력을 갖기 위해 가공 작업을 거쳐 나오는 것이다.


장르 불문 전문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면 표출은 표현으로 다듬어지는 것이 정론이다.

예술이란 이름으로 합리화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무엇보다 멋이 없다.


그림을 끌어 나가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모습들은 멋이 없다.

어떻게 해서든지 방안을 찾아내, 개선해 나가는 주도적인 모습들이 훨씬 더 멋있다.


예측할 수 없는 우연의 효과로 결과물을 만들지 말자.

의도한 대로 결과물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영감과 우연마저도 컨트롤할 수 있어야 예술가다.


성장에도 더 유리한 방향이니, 표출을 표현으로 개선해 나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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