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설 세우기

감각은 제한적이다

by 김앤트

가설이 시작되지 않으면 진실까지 오는 과정도 없다.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한, 효율 높은 두 가지 방법을 앞서 소개했었다.

첫 번째. 한 줄 쓰기

두 번째. 스크랩


이번 장에서 세 번째의 고효율 성장 방법을 작성한다.

수많은 방법 중에서도 손에 꼽을만한 방법이다.


가설 세우기


앞서 조금씩 언급했던 가설 세우기다.


과학이 접목된 분야에는 이 체계가 이미 모두 적용되어 있다.

이론이 생성되는 과정을 간략하게 줄여보면.

1. 의문을 품는다.

2. 관찰한다.

3. 실험을 거친다.

4. 연구를 통해 결론을 낸다.


이렇게 나온 결과물도 시간이 흐르면.

‘사실은 아닌 걸로 밝혀져’라며 이론이 뒤집어지고 수정되는 경우들이 많다.

당장 생각나고 널리 알려진 사례들만 예시로 적어본다.


지구가 네모나다고 믿었던 고대의 지평설은 둥근 지구로 결론.

수, 금, 지, 화, 목, 토, 천, 혜, 명이었던 태양계에서 퇴출당한 명왕성.

점점 오래된 화석이 발견되며 첫 인류 호모사피엔스의 나이 증가.

복원 작업마다 계속 변해가는 최근 공룡의 깃털 달린 모습.

파나마병으로 인한 바나나 멸종설은 일부 개체만 적용.

아침에 먹는 사과는 독이다. 금이다. 사실 상관없다. 등등으로 계속 변경 중.


일부 오보였던 것도 많겠지만, 그 당시 정론으로 굳어졌던 내용들은 발전에 따라 크고 작게 수정된다.


현재 사실이 아니라 해서, 그 당시 허무맹랑한 주장이었던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진실로 받아들일 만한 연구 결과와 근거들이 뒷받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상황에 따라 늘 바뀔 수 있기에, 찾아가는 과정의 체계를 더 탄탄하게 만들어야 한다.


과학 발달 전 원시 때의 토속신앙들, 애니미즘, 샤머니즘, 토테미즘 등을 지금 관점에서 바라보면 허무맹랑할 수 있다.

이론의 기반인 근거가 빠져있으며 막연한 믿음으로 이루어진 원시 문화에 가깝기 때문이다.


미래에서 현재를 바라보면, 크게 벗어난 이론들이 사실처럼 다뤄지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연구 체계를 거치며 만들어졌다는 점이, 원시 문화 때와 확연히 다른 부분이다.


막연한 추측보다 현재 사실 기반 자료 등을 분석하고 유추한다.

여러 가지 근거를 토대로 시작되는 가설은, 많은 관점의 비교와 부합 여부 등을 검증하고 학술 가치를 지닌 정설로 다듬어진다.


더하고 빼며 점점 더 상세해지고, 셀 수 없이 뒤집히면서도 진실에 접근해 가는 과정을 본받아야 한다.


이런 점들을 살펴보며 ‘그림에 어떻게 적용하면 효율적일까?’ 생각해 왔다.

ㅅ10.JPG 김앤트, 조합, 27.2x19.7cm, 도화지에 연필, 2012


그림도 여러 이론이 정설로 굳어져 있지만, 알려진 내용을 무조건 정답으로만 인식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정설은 여러 개의 임시정답 중, 접근성과 확률이 높은 결과물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다.

특히, 과학적 근거와 거리가 멀수록 이런 현상이 강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내면의 표현을 중시하는 미술에서는 꼭 사실적인 근거만을 중시하지 않는다.

다만 합리적인 결과 도출 과정과 근거를 만들어 붙여내는 작업을 차용하자는 취지다.


근거가 조금 빈약해 보이는 부분들에 대해 조사를 해보면.

이미 연구 결과가 존재하지만, 핵심적인 정보에 접근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만 몰랐었던 이유가 99%다.

나머지 1%의 소수 정보만이 막연하고 두루뭉술하게 처리되어 아직 정립되지 않은 부분들이다.


99%에 대해서는 추가 해석을 붙여낼 수 있다.

1%에 대해서는 근거를 수집해 가며 경험을 쌓아 원리를 찾아내 본다.


모두 가설 세우기 기반으로 만들 수 있다.


이론을 접할 때 ‘아, 그렇구나’가 아니라 ‘근데 왜 그럴까?’의 접근 방식이다.

머리가 조금 복잡해질 수 있지만, 이런 습관들을 통해 이론과 표현에서 많은 개선이 가능하다.


위와 같은 방식으로 개선한 사례 중, 온라인 강의로도 다뤘던 내용을 짧게 작성한다.


보편적으로 그림 그릴 때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재료는 연필이다.

연필을 잡으면 선을 먼저 쓰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을 잘 써야 한다'라는 정보를 접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선 연습 하는 방법을 찾아 보기도 하고, 선만 따로 연습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그런데 선연습이 정확히 어디에 도움이 될까?

장르 소재 재료 등 상관없이 그냥 향상 적용이 되는 걸까?


흔히 접하는 정보는 다음과 같다


선이 기본이다.

선이 그림 맛을 살려준다.

필력이 생긴다.

깔끔하게 그릴 수 있어야 한다.

강약 조절이 되어야 한다.

직선을 그릴 줄 알아야 한다.

곡선은 한 번에 그려야 한다.

털선은 그림을 불안하게 만든다.


이 내용들은 카테고리로 나누어 봤을 때 중구난방으로 분산되어 있으며, 하단에 위치한 n차 정보들이다.

정확한 근거가 보이지 않고 '해야 한다'와 '향상된다'만 존재한다.


오랫동안 의문을 가지고 관찰을 통해 정리한 내용의 일부다.

실제 4차원 공간에서 시간을 제외하면, 그림 소재로 많이 쓰이는 3차원 공간이 된다.

3차원 공간 안에서는 모든 것이 면과 면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선의 영향력이 크지 않음에 주목했다.

2차원인 평면에 선이 존재하며, 입체와 평면의 정의는 따로 디테일하게 나눠 나갈 수 있다.


선은 어떤 장르와 구성에서, 어떤 방식으로 사용해야, 시각적 효과를 나타낼 수 있을까?


AnT작업실에는 이 부분을 전제로 선연습 하는 방법이 따로 존재하며, 기존에 분산된 카테고리들을 모두 묶어 실용적으로 연결할 수 있다.

막연하게 연습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효율을 갖게 된다.

자세한 방법은 오프라인 커리큘럼에 담겨있다.


이렇게 널리 알려진 정보들도, '왜 그럴까?' 로 시작하여 '혹시 이런 것은 아닐까?' 추측성으로 진행해 근거들을 찾아낸다.

그 과정에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되며, 정정해 나가는 기간이 꽤 오래 걸린다.

이렇게 보완되고 완성된 이론은, 실제로 적용되는 디테일에서 큰 차이가 난다.


그런 부분을 하나씩 정립해 가는 것이 앞으로 그림을 그려 나가야 할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나의 수업 중에는 이런 개념을 계속 바꾸는 작업을 중점적으로 한다.

하지만 직접적인 영향을 받거나 배워야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누구나 그려가며 의문점에 추측을 반복해서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나갈 수 있다.

실적용 예시로

초점 밖 현상을 시각에서 어떻게 인식하는지 가설을 세우고 있는 상태다.

그 과정에서 예술 서적보다 과학 서적을 훨씬 많이 참조하는 편이다.


현상에 대한 궁금증과 표현에 대한 막연함 들은 아직도 많다.

마치 오픈월드 게임에서 파밍을 하고, 레벨업을 하며 퍼즐을 풀어나가듯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가설 세우기 순서를 정리한다.

이론을 적용할 때 다양한 관점에서 의문을 가져 본다.

부족한 부분에 대한 근거들을 조사한다.

근거를 토대로 추측성 가설을 만들어 본다.

가설에 대한 근거를 수집해 본다.

그림을 통해 실제 적용이 가능한지 실험하고 결과를 만든다.

정론을 임시로 세워 놓는다.

반복하여 수정을 거듭한다.


단, 미술의 특성상 사실만을 기반으로 삼지 않는다.

상상과 공상이 적용되어도, 같은 방식을 차용해 짜임새 있는 설정과 이론을 생성할 수 있다.


수확이 조금씩 쌓여 여러 논리에도 무너지지 않는 이론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면, 큰 폭의 성장 수치를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얻어낸 정보들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되면서 표현으로 연이 가능한 시스템의 기반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이 시스템 기반은 성장범위를 크게 확장한다.


나는 그림을 감각으로 그리지 않는다.


논리적 정답만을 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표현 안에 유의미한 설득력을 담기 위함이다.


가설 세우기는, 이런 부분들을 충분히 충족시켜 줄 아주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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