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의 함정
표면 위로 올라오는 정보는 버그픽스가 완료되어 있어야 한다.
나의 유튜브 영상 중, 미술학원을 잘못 선택해 다니며 겪게 되는 과정들을 담은 영상이 있다.
운 좋게도 알고리즘을 타 180만 뷰 정도에 3300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댓글들을 모두 읽어 봤다.
간접경험으로 인한 괴로움
직접 경험으로 인한 공감
소설과 주작으로 의심
다양한 반응들과 의견들을 모두 존중한다.
그러나 꼭 바로잡아야 할 내용들이 있다.
미술 전공자
미술 선생님
외국 아카데미 출신
현직 미술가
경력 n 연차 등등
분야의 전문성 있는 배경을 소개한 후, 영상에 쓰인 학생작품인 사실적인 그림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사진처럼 그리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다.
사실적으로 그리려면 사진을 찍는 게 낫다.
사실화는 그림으로서 가치가 없다.
그냥 베껴 그리는 것이며 창의성이 줄어든다.
입문 때 경험하는 정도로 넘어가야 한다 등등
흔히 알려진 사실화의 편견들을, 전공자들이 앞다투어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반대 의견들도 있다.
사진처럼 그릴 줄 알아야 한다.
똑같이 그리는 것이 그림의 기본이다.
사진기보다 더 똑같이도 그릴 수 있다.
베껴 그릴 줄 모르면 창작도 못 한다.
소묘가 원래 똑같이 그리는 장르다 등등
아이러니하게도 반대입장의 의견들도 정확한 내용이 아니다.
사실화 개념에 대해 서로 부정확한 내용들로 대립하니, 기준 없는 논쟁의 허무한 반복이다.
그 기나긴 미술 역사 속에서도 사실화는 잘못 정립되어 과도기에 있음을 실감한다.
일반 사람들은 전공자가 하는 이야기들을 정답으로 여기게 될 확률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전공자라면 더더욱 미치는 영향력을 감안하여, 더 정확한 정보 전달을 위해 심사숙고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본 영상에서 잘못된 정보들의 대립으로, 대다수 인식이 부정확하게 잡히는 것에 대한 부분들은 많이 아쉽다.
기본기를 익히는 목적에서 소묘를 알려 줄 때 중시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타 장르로의 연결이다.
‘연결된다’라는 것은 장르와 재료를 넘어, 높은 그림 이해도를 갖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보통 소묘를 하면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린다고 생각한다.
베껴 그린다, 모작한다, 사진 같이 그린다 등등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편견이다.
하지만 적어도 전공자라면 이 개념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사실화를 그리는 방법에는 크게 세 가지 단계가 있다.
첫 번째, 따라 그리는 단계. 흔히 말하는 모방이다.
두 번째, 사실적인 환경을 파악할 수 있는 단계. 여기서부터 장르의 초입이다.
세 번째, 극사실화의 단계. 두 번째 단계의 조건이 충족된 상태에서, 표현력이 극상으로 올라왔을 때 들어갈 수 있는 단계다.
전공, 직업, 경력 여부를 떠나
'사실적으로 그려봤는데 그것은 아무 의미 없다.'
'사진 같이 그리는 것은 시간 낭비다.'
이런 경우들은 첫 번째 모방의 단계를 넘기지 못해보고 내린 결론이다.
사실적 환경을 파악하는 단계까지 들어가면, 모방은 과정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모방에서는 타 장르로 연결되기 어려우며 기본기를 익혔다고 말하기 힘든 상태가 된다.
개념은 자신이 경험하고 보는 만큼에서 구성된다.
모두가 혼란스러울 만하다.
일반적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이자, 대학수업 내용에도 있는 다음 문장 때문이다.
"최초의 사진기 옵스큐라가 나온 이후부터 사실처럼 그리는 것에 대한 의미가 사라졌다."
그러나 사실화는 단순히 사실적인 표현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전제 자체가 편협하게 구성되어, 우리는 오류가 가득한 정보를 진실처럼 여기게 된 것이다.
같은 맥락의 예시 구성을 만들어 본다.
달리기가 속도를 겨루기 위해서만 만들어졌다고 가정한다.
사이클이 생겼을 때 달리기가 의미가 없게 된다.
레이싱이 생겼을 때 사이클이 의미가 없게 된다.
비행기가 생겼을 때 레이싱은 의미가 없게 된다.
이 세상에 빠른 것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도 아직도 종목마다 스포츠로 남아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장르별 고유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직접적인 예시를 만들어 본다.
프린팅이 개발되고 디지털이 발전했다.
간편하게 합성해 프린터로 다양한 이미지를 출력할 수 있다.
사진과 사실화 관계의 같은 맥락이라면 그림 자체의 의미가 흐려져야 한다.
심지어 최근 AI 기술의 발달로 더 빠르게 양산해 낼 수 있다.
AI가 그린 그림으로 밝혀지면 감동이 사라지고, 조금 신기한 감정만 남는 것을 느껴본 적 있을 것이다.
미술품 전시를 관람하게 되었을 때, 원본이 아닌 프린팅 물들로 감상하게 되면 크게 감흥이 떨어지는 경험들도 있을 것이다.
수작업만의 원본 고유 가치가 존재한다.
분야마다 고유 가치들은 오프라인 수업에서 다루고 있다.
다시 카메라로 넘어와.
고대 화가들조차 사실화를 현대의 사진 용도로 그려왔다고 잘못 알려져 있다.
이런 정보들은 중요한 정보가 유실되고, 방향이 한쪽으로 치우쳐져 고립되어 있는 것이다.
만약 추상화를 보고 의미 없는 낙서라 하면 그 순간 무지함으로 낙인이 찍힐 것이다.
알 수 없는 추상적인 형태에서도, 작가 고유의 해석이 담겨 있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사실화도 같다.
사실을 표현할 때도 각각 고유의 개념과 해석이 담겨야 한다.
'그냥 그대로 그리는 것이 무슨 해석이 담겨, 똑같이 그리는 거지'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카테고리를 더 타고 올라가 본다.
사실화는 구상미술의 한 장르다.
구상미술과 동등한 카테고리에 추상미술이 있다.
두 장르의 차이를 간단하게 살펴보면.
구상미술은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형태로 표현하는 장르다.
추상미술은 주관적 개념과 속성으로 표현하는 장르다.
간단하게 정리해 보면, 두 장르의 큰 방향은 같으며 변환해서 담아내는 그릇이 다르다고 파악할 수 있다.
그림은 장르마다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 파악하는 방법, 변환하는 해석, 재료, 기술, 실용성 등을 각각 다른 모양의 그릇에 담아낸다.
이런 식의 공부를 통해 많은 작업물을 남겨본 경우, 사실화는 단순한 따라 그리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더 큰 카테고리 미술에서, 한 번 더 예술로 타고 올라가 보자.
예술은 인간이 창조하는 모든 행위를 뜻한다.
창조하는 행위만으로 좋은 가치가 생성되었다 볼 수 없지만.
그 안에 충분한 체계를 토대로 작가의 의도가 깔려있다면, 존재의 가치가 생긴다.
그것이 표현의 자유를 추구하는 예술 안의 미술이다.
미술의 관점에서 사실화는 모방의 단계가 아닌 작가만의 사실적 해석이다.
사실화는 시대 흐름에 따라 맥이 끊기며 개념적으로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
아직도 정립이 덜되어 있고 과도기에 위치해 있다.
많은 하이퍼리얼리즘 작가가 베껴 그리는 그리드 방식을 차용하기 때문에, 공감대를 얻어내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이런 개념들이 아직 널리 퍼져있거나, 공식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운 점을 이해한다.
사실화에 대한 접근은 간단한 질문으로 시작해 보자.
사진은 과연 사실인가?
A와 B는 C를 똑같이 보고 느낄까?
현실은 사실처럼 느껴지는가?
모두 다르게 느껴지는 현실에서 나만의 사실을 탐구하고 표현하는 것이 사실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