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 Patch.exe
굳이 스스로를 포장할 필요 없는 능력제의 삶이 이상적이라 생각했고, 그렇게 될 것이라 믿었다.
큰 성취를 이뤄도 자기를 내세우지 않으며 할 일에 충실하고, 겸손하게 살아가다 보면 주변에서 자연스레 알아봐 줄 것이다.
성취 정도와 비례해 기회가 올 것이며, 수행 능력에 따라 돈과 명예는 자연스레 따라오게 될 것이다.
영화, 드라마, 소설, 만화, 자기 계발서 등의 미디어 매체 안 대부분의 주인공은 그렇게 성장한다.
고난과 역경을 겪더라도 그것들의 보상을 크게 상회하는 축복을 누린다.
임계점을 돌파하면 펼쳐지는 드라마틱한 삶
본업의 충실하면 자동으로 따라오는 거구나. 부러웠고 그렇게 살고 싶었다.
참 직관적이고 알기 쉬운 체계로 느껴져서 좋았다.
20대 초반까지도 그런 소망은 아주 강했고, 조금도 이뤄본 적 없지만 진리라 여겼다.
누가 어떤 대학을 나오고, 어디에 취직하고, 얼마를 벌어 유명하던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현실을 애써 외면하는 것이 아니었고, 정말 나와 상관없는 일들이었다.
학력, 이력, 유명세, 수입 등은 정해놨던 우선순위 뒤쪽에 놓았던 것들이었기에, 주변 말에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하는 일이 완성되면, 모든 것은 자동으로 따라올 거라는 확신의 기대심리였다.
너무 동화 같은 일인가?
타인이 인정하기 전에 스스로 포장하는 모습들을 보면, 빈 수레가 요란한 허영심이라 여겼다.
강하다기보다 약하다는 느낌
익었다기보다 설익은 느낌
순서의 배열이 바뀌면서 주객이 전도된 느낌
돈을 벌고 싶고 유명해지고 싶다면, 먼저 실력을 더 키우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이런 기준을 갖고, 그림에 대해 칭찬을 들을 때에는 항상 손사래를 치며, 아직 멀었다고 얘기해 왔다.
낮춤이야말로 욕심과 자만감을 컨트롤할 수 있게 만드는 자체적인 제약이었다.
기준을 조금씩 바꾸게 된 계기가 있었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성과가 없었던 나의 모습에, 응원해 주던 사람들이 서서히 바뀌어 가는 것을 느낀 경험이었다.
아직도 그림만 그리고 살고 있니?
그림만 그리는 것은 너만 편해지고자 하는 것이다
부모님 생각도 해야지
적어도 1인분은 하면서 살자
넌 세상이 두려워서 회피하고 있는 것 아닐까?
아니다 싶을 땐 돌아서는 것도 용기야
많은 사람의 조언과 의견 중 99% 이상은 비판적인 내용으로 바뀌었다.
내가 받아 온 여러 조언의 방법들은 분명 잘못되었지만, 어떤 배경을 담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올바른 조언 방법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루기로 한다.
일반적인 사회적 기준으로, 대다수가 바라보는 시선에서 나의 모습은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말하며 오랜 기간 보이는 성과가 없으니, 의심은 확신이 되었을 것이다.
아무 계획 없거나 잘못된 방향을 고집하는 모습으로 보였을 것이다.
철없이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단순한 아집과 객기이자, 노력의 양마저 적다고 느껴졌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 그런 상황 속에서도, 그림으로 얻어 내는 내적 성취는 분명 높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모두에게 걱정을 끼치고 있었다.
때론 얕잡아 보이고, 만만해 보이기도 한다.
그림의 성취도와 나의 생활은 비례가 아닌 반비례로 치닫고 있었다.
내가 원하던 삶과 정반대의 모습으로 향해 갔다.
어떤 말로도 표현 못 할 감정들 속에서, 더 이상 겸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님을 다시 한번 자각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뼈저리게 느낀 점이 있다.
낮추면 낮출수록 낮은 사람으로 인식된다.
하나의 임계점을 돌파해도 원하는 것들이 저절로 따라오지 않는다.
표면적 성과 없이 강한 신념과 주관을 섣불리 드러내면, 말뿐인 사람으로 비친다.
운이 왔을 때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실력이지만, 그 운이 끝까지 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어 승승장구할 수 있는 사례가 꽤 흔한 것 같지만
보통의 경우 그 길은 만나기 참 힘들다
길을 만나는 타이밍은 정말 중요하다.
그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동력이 떨어져, 폼이 크게 하락할 수 있다.
폼이 상승하고 있을 때 길을 마주하게 되면, 상상하기 힘든 가속도가 붙는다.
내가 만난 첫 번째 길은 짧고 좁았지만, 그마저도 찾아내기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만나게 된 계기도 그동안 하기 싫었던 행동, 일들을 억지로 해 나갔을 때였다.
겸손과 충돌을 일으키는 스스로에 대한 포장.
고인물
마스터
연구가
금손
멘토 등등
스스로 붙여도 되는 미사여구들이 아니었지만 조금씩 시도하게 됐다.
애써 담담했지만 따라오지 않는 표면성과 시선들에 지쳐갈 무렵쯤부터였다.
이상적인 절차를 한수 접고, 다른 삶들을 많이 관찰했다.
내 분야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좋아하는 수요층은 어느 지점일까?
부담스럽지 않고 편하게 접할 수 있는 적당한 지점은 참 의외였다.
대중의 시선에선 미술 초입기를 벗어난 중간 과도기 정도를 가장 좋게 인식한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만큼 보인다.
그림에 대한 판단영역은 그다지 넓지 않다.
볼 수 있는 영역은 직접 그려 낼 수 있는 영역과 대부분 비슷하다.
그 이상의 단계들은 모두 비슷한 높이로 느끼게 되며, 그 지점부터는 취향 차이로 판단한다.
보상 없던 삶에서 목적 외에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이상적으로 그리는 장면을 현실에서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답을 구하기 위해, 바라는 것들로의 도달 시간을 좀 더 늦추기로 했다.
우회한 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곳의 식들을 공식으로, 정답으로 만들어 가고 있었다.
자기를 포장해서 내세울 줄 알았다.
사람들과 눈높이를 맞출 줄 알았다.
그로 인해 많은 것을 얻으며 생활할 수 있고, 그 자원들을 토대로 더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있었다.
포장하는 방법들도 인간 심리 연구 기반의 다양성을 지녔다.
그 또한 전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메이킹과 마케팅 부분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지나고서야 보일 땐 항상 늦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약간만 더 유연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림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여러 가지 방향을 두고, 시행착오를 통해 보완하는 경험이 이뤄졌다면 더 성장했을 수도 있겠다.
갖고 있는 장점을 더 많이 알릴 수 있고, 더 얻을 수도 있고, 힘을 모아 더 상승할 수도 있는 선순환 구조가 생성됐을 텐데. 그동안 하지 못했다.
표면으로 나타나는 사회적 성과는, 상업적인 면이 조금이라도 들어갈 수밖에 없다.
자기에 대한 포장은 자원을 모으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다.
아직도 포장 작업은 마음에 안 들고 하기 싫은 일 중의 하나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제목과 내용에 자극성도 한참을 고민한다.
온라인 클래스에 소개 페이지들도 눈을 질끈 감고 쓴 것들이 많다.
SNS 홍보 활동 또한 하고 싶지 않다.
결국 해야만 했기에 했다.
겸손은 미덕이란 말을 올곧이 있는 그대로 삼았을 때, 포장은 호환되기 어려운 영역이다.
성향에 어긋나는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겸손에 호환성 패치가 필요했다.
패치 내용은 겸손을 최소한의 미덕으로 지켜내며 존중받을 방법들이다.
패치 내용이다.
1. 목적은 담백하게 표현할수록 깔끔하게 받아들여진다.
2. 타인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한 수동적 겸양은 피한다.
3. 과한 겸손은 때에 따라 과시 욕구의 기제로 전달될 수 있다.
4. 정보 전달에서 개인감정은 본질을 흐리기에 최소한으로만 사용한다.
5. 객관성을 기준으로, 그동안 해왔고 할 수 있는 만큼의 자신감을 애써 숨기지 않는다.
겸손은 스스로를 낮추거나 높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상태를 드러낼 때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