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고착점
극단성은 시야를 좁고 흐리게 만든다.
이미 지나왔고 앞으로도 계속 겪게 될 선택의 기로.
분기점에 관련된 이야기다.
20대 중후반쯤 미술과 직업의 연결성을 고민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디지털 그림 쪽을 관련자들에게 추천받았었다.
몇 년 동안 종종 들어오다 보니, 관심이 크게 가진 않았지만 해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화 쪽에서 오랜 기간 동안 돌아오는 보상이 없어, 초조해지고 스스로에 대해 의구심이 강해질 때쯤이었다.
심리적, 멘탈적으로 가장 약해졌던 시기였다.
단단히 고정되었다 믿어온 자아 정체성도, 기약 없던 바람엔 조금씩 흔들린다.
처음으로 나의 주관에서 벗어난 다른 의견에 따른 선택을 했다.
중요한 분기점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회피성이 짙었다.
현재의 실패는 미래의 양분이 될 수 있기에, 시행착오와 극복이란 말을 좋아한다.
그때의 선택은 이런 전제에 해당하지 않는 불필요했던 과정으로 남았기에,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들 중 하나다.
때론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 존재한다.
여태까지 스스로 결정지은 방향에서 흔들리지 않고 잘 채워 오다, 단 한 번 다른 의견에 휘둘려 결정하게 된 그 결과는 참혹했다.
그 후 노선을 크게 이탈한 듯, 쌓아왔던 모든 루틴이 장기간 붕 떠버렸다.
누구를 원망한다거나 책임을 바랄 생각은 없었다. 그 선택도 스스로 한 거다.
그랬기에 어떤 경우보다도 큰 후회로 남았다.
'남의 얘기를 듣고 시도한 결과가 안 좋아서 후회됐다.'
이런 회피성 주제가 아니다.
내가 고른 선택은 '쉬운 선택'이라는 점에 주목해 본다.
남들이 제시한 방향으로 따라갔다는 것부터 핑계다.
그 순간 비교적 마음이 편하고 안정적인 쪽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의심은 피곤하고 분별은 복잡하기에, 맹목적인 믿음으로 인한 선택이 생긴다.
디지털 그림을 선택했을 때, 다른 사람들 말을 듣고 행동하는 게 더 쉬웠다.
모두가 긍정적으로 건네는 말을 들으며, 근거 없이 믿고 행동하는 게 편했다.
거슬러 올라가, 처음 회화에서 연필소묘 쪽을 선택하고 주변 평가와 상관없이 해나갔던 것은.
뚜렷한 선례자가 없었던. 장담할 수 없는. 막막하고 어려운 선택이었다.
도전적인 선택 속에서는 수없는 실패를 겪어도 힘듦과 별개로 참아낼 만했다.
아쉬움은 크지만,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고 극복할 의지가 남아있었다.
그것들이 좋은 양분이 되고 후회 없는 경험이 되어주었다.
쉬운 선택의 결말은, 그 수없던 실패와 극복에 대한 내성들이 우스운 듯. 감당하기 힘들 강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의지마저 꺾어내고 정체성을 흔들어 댔다.
내성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한 상황에서만 작용한다.
쉬운 선택에 대한 실패 기간은 짧았지만, 재활은 3년 이상 걸렸다.
그 기간 곱씹으며 정리한 분기점 개념이다.
중요 분기점에서는 내가 부담스럽고 더 어려운 쪽이 정답일 확률이 높다.
어려운 쪽은 심리적 부담이 더 크고 실행 가능성이 적을 확률이 높은 곳이다.
현재 버거울 것 같은 일들도 필요하다면 해야 한다.
스스로를 믿어야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기점을 만들 수 있다.
기점이 만들어진 실패는 쓰릴지언정 후회는 상대적으로 적게 남는다.
후회가 적어야 다시 도전할 의지가 생긴다.
쉬운 선택은 비교적 무난하며 편하고, 큰 기준점이 없던 곳이다.
웬만하면 당연히 성공할 것이라 여겨지고, 실패에 대한 걱정이나 두려움이 막연하다.
예상치 못한 큰 실패를 경험하게 되면 자아가 크게 흔들린다.
중요 분기점은 자주 오지 않기에, 한 번의 선택 실수도 치명적일 수 있다.
작은 선택지들은 하루에도 무수히 많이 나온다.
글 쓰는 것보다 누워있는 편이 더 쉽다.
일하는 것보다 노는 것이 더 쉽다.
그림 그리는 것보다 게임을 하기가 더 쉽다.
매일 편하고 쉬운 쪽으로 선택하면, 정체기를 금방 마주하게 된다.
일과 자기 계발에서만큼은 꼭 이 부분들을 지켜야 한다.
하기 싫을 때 하나라도 꾸역꾸역 해낸다.
졸릴 때도 최대한 버티며 해낸다.
놀고 싶은 것도 하루 루틴이 끝날 때까지 참는다.
참다 보면 일이 더 즐겁게 느껴져, 놀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는 경험도 한다.
매일 지키며 살기 어렵지만, 흘러간 시간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이 선택을 한다.
순간순간 더 어려운 선택이 발전된 모습을 만든다.
마지막으로 분기점의 다음 단계인 고착점에 대해 정리한다.
분기점의 선택은 끝이 아닌 시작 지점이다.
행동 가치관이라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을 구성하는 길은 절대 하나가 아니다.
하나의 가치관 안에서도 뻗어나가는 큰길과 골목길이 무수히 많다.
분기점을 기준으로 길을 잘 배치해 나갈수록, 마을이 도시가 되고, 도시가 국가가 되는 확장 단계로 진입할 수 있다.
어려운 선택도 진행하다 보면, 쉽게 바뀌게 되는 고착 지점이 생긴다.
고착화될수록 패턴이 굳어지면서, 처음보다 비교적 쉽게 느껴지는 현상을 가진 지점이다.
고착 지점을 판단할 수 있는 대표적인 증상이 있다.
근거 부족한 고집이 생기면서 아집으로 빠지게 되고,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시야가 많이 좁아지는 것이다.
루틴이 점점 안정화되면서, 다시 편함을 추구하는 과정을 겪으며 발생하는 것들이다.
편한 느낌과 고착점은 같은 색을 띤다.
루틴을 수정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새로운 방향 설정을 해야 할 타이밍이며, 분기점의 재활용도 가능하다.
선택했던 분기점을 돌아보면, 후보군에 있던 방향들도 현재 필요한 요소로서 타이밍이 잡힐 때가 있다.
모든 방향에는 정답이 존재하고, 소화할 수 있는 순서가 나뉘어 있다.
예를 들어 상업성을 포기하고 그림 향상에 매진할 때의 일이다.
어느 순간부터 상업성을 피하는 행동이, 어떤 확고한 가치관과 신념에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그냥 단순히 자신 없고 하기 싫어서 피할 때도 있었다.
해오던 루틴 그대로 하는 게 더 편하기 때문이다.
발전 겸 순환을 위해 상업미술 쪽으로 일을 한다.
상업 미술을 하다 보면 보상을 꽤 얻게 되는 날이 온다.
어느 정도 생계유지가 가능해지면 만족하고 안주하게 될 수 있다.
그렇게 그림 발전 욕구가 줄어들고 동기가 떨어질 무렵에는, 일을 잠시 멈추고 다시 그림 연습을 한다.
반복하다 보니 두 가지를 한 번에 할 수 있는 경우의 수도 많이 생기게 되고, 그로 인해 할 수 있는 많은 방향의 범위들도 넓힐 수 있었다.
일상생활 속에도 많은 부분에, 분기점과 고착점에 대한 해석을 적용할 수 있다.
반복하여 성장하다 보면 그동안의 선택이, 다른 선택지를 배제하는 극단성을 띠고 있음을 알게 된다.
목표를 설정해 보자.
앞으로의 방향과 선택은 이분법이 아닌 퍼센티지로 조절해 나간다.
지나간 선택지들도 필요에 따라 활용할 수 있는 유동성을 지니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