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이 소멸하는 과정
사소할 수도 있는 작은 개념의 차이가 큰 기반을 바꾸는 근간이 될 수 있다.
항상 경계하고 피해 온, 사소하면서도 흔한 말 두 가지를 살펴본다.
첫 번째, '대충'
미디어에서 흔하게 노출되며 다루기 전부터도, 경계해 온 말과 행동 중 하나다.
두 번째, '현실'
'현실을 생각해서', '현실을 직시하라'는 말들에 크게 공감되지 않았고 다른 해석을 해왔다.
한 가지씩 정리해 본다.
'대충'을 간단히 정리해 보면, 성의와 책임감이 없는 행동이다.
그날, 컨디션, 기분 등에 따라서 움직이는 것.
짧은 판단과 생각으로 들어가는 행동이기도 하다.
결과를 맹목적인 믿음과 상황에 맡기는 것에 가깝다.
'대충'은 '대략'의 하위 호환 개념이다.
'대략'은 목표를 세워 놓고 기준점을 갖는 행동이다.
몇 가지 기준점을 두고, 넓은 오차 범위를 감안해 들어가는 행동이다.
이 행동들은 자체적인 가이드라인이자, 시뮬레이션의 개념을 만드는 요소가 되어준다.
'대략'은 기준점을 바탕으로 성공률을 높여, 결과를 만들어 내겠다는 의지가 확고하게 담긴 단어다.
대략의 기준을 세우는 방법들은, 숙달되기 전까진 복잡하게 느껴져 진입 장벽이 있다.
정확도를 만들어 가며 목표로 점점 다다르기 위해 대략적으로 들어가는 것과, 기준 없는 감 또는 느낌으로 대충 하는 것은 초반 성공률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방법이 정착되어 갈수록 서로의 차이는 크게 벌어진다.
'대충'은 '대략'으로 변환해 나갈 때, 재료로서 소멸한다.
나는 브런치에 글을 공개할 때 총 n번의 수정과 보완작업을 거친다.
개인 채널에 유튜브로 찍어놓은 영상을, 시안으로 적는다
시안을 글로써 완성하기 위해, 초안으로 수정한다.
내용 전달 목적을 수월하게 만들기 위해, 메모장에 다시 한번 보완한다
개인 플랫폼 강의 영상으로 제작하기 위해, 영상화하여 내용을 편집하고 추가한다.
전체적인 구성과 체계를 맞추고 적절한 단어를 조정하며, 브런치 글쓰기에서 마무리 짓는다.
발행 후에도 주기적으로 검토하며 문맥을 다듬는다.
출간을 목적으로 독자의 관점으로 다시 정리한다.
대충 작성한다면 1시간 내로 끝낼 수 있는 작업이지만, 대략적으로 범위를 좁혀가는 과정을 거치며, 한 편당 최소 5~12시간이 걸린다.
외주일과 개인 그림을 그릴 때도 기본 소스만 다를 뿐 비슷한 체계를 거친다.
이런 작은 차이들이 모여 고유의 개념이 되고 행동으로 연결되면, 고효율의 성취를 이룰 수 있다.
'현실'은 일반적으로 대다수가 살아가는 방법을 기준으로, 형성된 공간을 뜻한다.
충고, 조언, 설명 등에서 현실이란 단어가 나오는 보통의 배경을 살펴보자.
허황될 때
불가능할 때
무리가 있을 때
타협할 때
힘들 때 등등
'현실적으로', '현실을 직시해서' 와 같은 말들이 나온다.
'현실'은 본인과 타인이 판단하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타인이 판단할 때의 상황이다.
'현실'이란 얘기를 들을 때마다 크게 공감되지 않았던 것은, 판단자의 경험과 기준의 시야로 상황을 규정지음에 있다.
내가 목표를 삼고 꿈꾸고 있는 것들은, 누군가가 현실에서 누리고 있는 삶이다.
어떤 사람에겐 꿈이고, 어떤 사람에겐 현실이다.
이런 민감한 카테고리에서 상위 개념들은, 제삼자가 가볍게 판단 내릴 수 없는 무게를 지녔다.
내 기준에서 현실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도, 상대방에게 전달할 필요는 없다.
예측 결과를 떠나 큰 의미도 없거니와, 책임 못 질 말들이 확실하다.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사람들에게 다소 무례한 언사일 수 있다.
목표를 이루기가 어렵다는 것은 모두가 인지하는 부분이다.
직접 행하고 있는 사람들이 더 크게 느끼며 실감하고 있을 것이다.
타인을 보았을 때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꿈을 꾼다고 판단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해나가는 과정과 결과를 보니, 자신의 기준에서 계획, 실행력, 노력 등의 준비가 부족하다 느껴져, 현실에 대한 조언을 꺼내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충분히 공감되지만, 이런 판단 전에 간과해서 안 되는 부분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꿈은 실현 가능성 유무와 결과보다도 달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삶의 목적을 갖는다.
두 번째
가치 높은 노력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이뤄진다.
남들에게 보이는 노력은 전체 과정에서 일부분에 불과하다.
남의 시선을 의식한 인정 욕구 심리의 보여주기식 노력은, 순도가 매우 낮다.
결국, 우리가 보고 느끼고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은 극히 일부분이다.
삶에 크게 관여되고 개념적으로 중요한 평가를 하기 위해선, 그 사람에 대한 깊은 연구와 많은 데이터가 전제 조건으로 깔려 있어야 한다.
순간을 보고 이루어진 전체 평가는 가볍고 오만하다
스스로 판단하여 현실을 규정짓는 경우도 많다.
자기 객관화를 통해 현실에 대한 상한선을 스스로 낮추게 되는 행위다.
이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여러 갈래 방향성에 관련된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발전하기 위해서, 하나의 문장을 통해 개선 방향을 찾을 수 있다.
과정들은 목표 크기를 비례하며 따라온다.
근거 부족한 단순 희망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진행하며 따라오는 과정의 경험치들은, 버프를 받은 것과 같이 효율 높게 적립된다.
모든 가능성은 꿈에 크기에서 온다.
큰 꿈은 희소성, 특수함, 고연봉, 유명함, 명예로움 등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직업, 역할, 상황 등이 일반성을 지녀도 꿈의 크기와는 별개의 요소들이다.
꿈의 크기는, 각자의 가치관 범주 아래 기준점을 갖는다.
누리고 있는 부분은 현실이고, 못 누리고 있는 부분은 꿈처럼 여겨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태어났을 때 환경도 절대 무시 못 하며, 가진 능력들의 타고남도 다양하다.
하지만 삶의 메커니즘을 파악하여 늦게라도 충분히 환경을 만들고, 후천적인 노력으로 일어선 사례들도 많기에 귀감으로 삼게 된다.
어느 정도 영역을 구축하게 되면서, 나의 진로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친구들도 간혹 부럽다는 말을 건넬 때가 있다.
뚜렷하게 크게 이룬 것도 없지만, 자유롭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삶이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반대로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하는 그 친구들이 부럽기도 하다.
서로 부럽다고 느끼는 부분들의 이면을 보면 또 달라질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다른 방향의 삶이지만 각자 위치에서 조금씩 이뤄 나가며, 현재 삶의 만족도를 올려 나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현실의 정의가 아닐까?
대부분 본인의 상황은 본인이 가장 잘 안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친구들에게는 조언보다 응원이 큰 도움이 된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언제나 선택은 그들의 몫이다.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축복이다.
무언가 하나를 찾아낸 것은, 삶을 주도해 나갈 수 있는 스타트 라인을 발견한 것과 같다.
여러 가지 유혹과 타협 속에서도, 한 방향의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가.
적성에 맞는 일은 대부분, 우연히 찾아낸 계기를 토대로 필연처럼 만들어 나가게 된다.
하루에 하나.
지나고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안 한 날들이 더 많을 수 있다.
최소한 한 가지라도 시도한 하루라면, 그만큼 꿈에 근접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어딘가에 존재하는 꿈의 현실을 나만의 것으로 만들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