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 멋있다

미술가가 바라본 일상

by 김앤트

완벽한 컨디션에서 일을 진행할 수 없다.


인생에서 완벽한 컨디션이었던 날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확실히 많지 않다. 졸리지도 않고, 배고프지도 않고, 온도도 적당하고, 아픈 곳도 없고, 정신도 또렷한, 뭐라도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은 상태. 가끔 좋은 컨디션이어도 몇 시간 지나면 금방 또 졸리고, 배고프고, 정신이 흐릿해지고, 나른하고, 귀찮아지는 상태가 되곤 한다. 이런 이유로 무언가 시작할 때 컨디션 좋을 때를 기다린다면 계속 늦춰지고 미뤄지게 된다.


대부분의 운동선수는 크고 작은 부상을 입은 채 경기에 출전하며 평소에도 몸이 정상인 경우가 없다. 취미로 복싱을 배운 적이 있다. 처음에 안 쓰던 근육을 쓰니 온몸이 다 아프고, 팔도 못 올릴 정도로 근육통이 심했었다. 오히려 운동하기 전보다 피로감이 심하고 체력이 훨씬 떨어진 느낌이었다.

스파링 할 때마다 '몸 상태가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더 좋게 풀어나갈 수 있을 텐데.' 항상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모를 때가 가장 겁 없을 때라, 컨디션만 좋으면 누구보다 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을 했다.

매일 다니며 연습하다 보니 경력자들을 계속 관찰하게 되었다. 어린아이, 성인, 노인 등 나이와 상관없이 같은 조건에서 묵묵히 견뎌 내며 운동하고 있었다. 스파링 결과에도 승복하며 핑계가 전혀 없었다. 몸이 안 좋다. 체력이 없다. 잠을 못 잤다. 이런 얘기는 일절 하지 않았고, 안 좋은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해보려는 의지와 행동이 쌓여야 강해진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정말 멋있다고 느꼈다.

그림을 그리는데 조금만 피곤하고 졸려도 하기 싫어지고, 연필이나 펜을 자주 놓는 모습이 약해 보였다. 정신적 체력인 멘탈리티가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판단하기 어렵지만, 컨디션에 따라 행동이 결정되는 것은 확실히 체계적이지 않은 방향성이다.

미술 장르에 깊숙이 자리 잡은 '즐기면서 해야 한다.'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분석하지 않은 느낌이 주체가 된 예술성을 기반으로 삼는다면, 컨디션에 대한 기복은 개선하기 어렵다.


용용.jpg 김앤트, 얘기하는, 23.2x28.2cm, Charcoal 15 min, 2018


컨디션이 안 좋은 상황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즐겁지 않다.'라고 느낄 때, 의미 없다는 합리화를 통해 실행을 멈추게 되곤 한다.

장르 특성상 그룹이 아닌 혼자 연습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혼자 더 쉽게 판단하고 결정하게 되는 부분이 생긴다. 컨디션뿐만 아니라 환경적인 부분들. 생활비, 가족, 이사, 직장, 학교 등 시간을 두고 좋아지게 기다렸다가 괜찮아지면 하려는 계획이 실현되기란 어렵다. 그렇게 오래 기다려 봤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조금의 여유를 기다리는 그 시간이 끝도 없이 이어지곤 한다. 하나 풀리면 하나가 꼬이고 무한 반복되며 풀 컨디션이 나오기 힘든 구조다.


문제가 동시에 풀려도 유지시간은 짧다.


취미 목적의 그림이라면 힐링하고 즐기면서 진행해도 상관없다. 전문적인 목적에서는 항상 즐기면서 하기 어려우며, 즐거움의 성질은 성장에 의해 바뀐다. 때로는 하기 싫은 것을 견디고 해냈을 때 얻는 성장 수치가 더 클 때도 있다. 직업과 능력으로 완성되었을 때, 하고 싶은 때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해 나갈 수 있다. 성장 과정에서 결과에 있을 즐거움을 미리 적용해 실행하려고 하면 성립되지 않는다.

이런 생각을 통해 직장인들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게 되었다. 일하고 싶은 사람은 솔직히 없을 것이다. 지옥철, 지옥 버스, 교통체증을 견디며 출퇴근하고, 하루 8시간 한 달에 20일 이상 몇 년 동안 계속 꾸준히 일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림을 직업으로 삼으려면 적어도 그런 성실함에 반이라도 따라가야 한다. 누군가 봐주고 시켜서 하는 연습이 아니어야 하고, 연구하는 시간이 적어도 하루 4시간 이상은 되어야 한다.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에 반도 안 되는 기준을 최소한으로 둔다.

몇 년 전, 오랜만에 만난 직장인 친구가 나의 작업실을 부러워했지만, 나는 친구가 더 대단하게 느껴지고 스스로도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 '조금 더 부지런해야겠구나.' 혼자 있다 보면 멍하게 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다. 해야 할 것들을 머릿속에서 나열만 해보다 끝나는 시간을 최대한 생산성 있게 사용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림을 직업으로 삼으시려는 분들이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좋을 만한 내용이다.


타장르의 장점은 주장르의 귀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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