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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앤트 Oct 18. 2023

쥐어짜기  

우려냄

과정의 끝점이 보이기 시작하는 지점부터 참기의 시작이다.


쥐어짠다는 말은 듣기만 해도 피곤함을 주지만 실력을 늘리는데 적용할 만한 타이밍이 있다. 

그림을 그리다가 보면  초 중반까지 잘 끌어 나가다 뒷심이 부족해, 마무리하는 시간을 짧게 가져가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무언가 참아야 할 때, 중간에 고비를 넘기며 계속 잘 참다가 결과가 보이는 지점부터 갑자기 조급해지며 참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다.

막연함이 지속되다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구체적인 현실감이 생기며 성급해지곤 하는데, 그렇게 만든 결과들은 오류가 많이 발생한다.


성급함은 얕은 깊이를 만든다.

 

그림에서 이 결과는 장르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사골을 끓여내는 과정과 비슷하다. 과정이 덮어쓰기가 되지 않는 전제하에 잘 우려낼수록 정말 깊어 진다. 

우릴 때 중간 불순물을 걸러 내면서 시간에 맞게 잘 우려내야 하는데, 그런 방법을 만들기 위해서 쥐어짜기가  필요하다. 근력 운동을 할 때, 특히 마지막 세트 한계치에서 꼭 두세 번씩 더 쥐어짜서 무게를 들며 과부하를 준다. 과학적으로 근 성장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는 방법이다. 하지만 근육만을 쥐어짜는 것이 아니다. 엄밀하게 따져보면, 실행을 위해서 근육보다 의지와 멘탈을 먼저 쥐어짜는 것이다. 그림에도 이 부분을 반영해 보면 좋다.

그리는 중 마음이 조급해지며 빨리 결과물을 보고 싶다면, 무리해서 마무리하지 않고 잠깐 쉬는 것이 좋다. 계획을 좀 더 세우고 리프레시된 상태에서 더 진행해 본다. 항상 할 수 있는 부분에서 결론을 내면 성장 효율이 떨어진다. 

특히 혼자 있으면 집중 못하고 여럿이 같이 있어야 집중할 수 있는 성향은, 분위기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지곤 한다. 조금만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분위기를 스스로 만들어서 주도적으로 해 나가면 되지만, 쉬운 일은 절대 아니다. 목표가 눈에 보일 정도로 굉장히 뚜렷해야 한다. 그림을 그려나가며 단점을 개선하고 장점을 극대화할 부분을 설정할 줄 알아야, 분위기를 만들어 될 때까지 할 수 있는 동기를 만들 수 있다.

 

동기가 확실해야 멘탈을 쥐어짤 수 있다. 


김앤트, 피어남, 24.2.X33.4cm, oil on canvas,  2023


하기 싫을 때 급하게 마무리하면, 원래 할 수 있는 최대치까지 끌어내지 못한 경험이 생긴다. 그 경험이 계속 반복되면 누적되고 당연해지기 시작하며, 성장할 수 있는 지점에서 포기하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AnT작업실 학생들을 예로 들어보면 직업을 목표로 배우는 분들은 과제가 있다. 매주 현재 할 수 있는 최대치에서 5~10% 정도 더 진행하기를 권한다. 물론 그것이 힘들다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동안 할 수 있는 양을 충족해 오지 않으면 다음 진도에 대한 코멘트를 달수 없게 된다. 이런 경우 더 할 수 있도록 동기 부여에 신경 쓰지만, 그 기간이 길어질수록 성장 폭이 줄어든다. 

과제에서 스스로 쥐어짜며 열심히 해온 경우 한 달이 다르게 성장한다. 그렇게 1년 이상 지속되면 한계선에서 아슬아슬 줄타기할 수 있는 패시브 스킬을 가질 수 있다. 정신적인 체력이 많이 소모되지만 스스로 성장하는 방법을 익히게 된다.

가끔 들어오는 외주작업들은 보통 혼자 하는 일이 아닌 팀 단위 일일 때가 많다. 외주 일은 이름을 걸고 하는 일이라 한 번도 설렁설렁한 적이 없다. 최대치의 결과물을 넘겨도 회의를 통해서 보완해야 할 수정 사안들을 전달 받는다. 내 생각과 다른 피드백이 왔을 때 조율이 안 되고 그만큼의 단가도 맞지 않아서, 중간에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았다. 

'원하는 대로 하고 싶었다면 내 작품을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고 피드백대로 더 수정해 가며, 어떻게든 좋은 결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좋은 마무리에서 얻게 된 경험치는 굉장히 크다. 평소에 조금 과하다고 생각한 부분, 디테일하게 그려야 되는 부분을 생략한 경우에도 생각보다 괜찮은 방향으로 연결되었다. 다양한 시각이 더해져 혼자서는 닿기 힘들었을 경험들이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과정을 끌어나가는 시간보다 마무리하는 시간을 더 길게 잡아서 충분히 우려낸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우린다는 것이 절대로 표현의 양을 말하는 건 아니다. 한 획이나 단시간에 만들어야 되는 표현들도 많기 때문에, 계속 표현을 올리는 과정이 아니다. 의도에 맞게 조정해 나가는 시간으로, 쉽게 생각해서 보정이라 보면 된다. 사진을 보정하듯 포인트를 바꿔 보기도 하고, 강도를 조절해 보기도 하며 위치를 수정하기도 한다. 의도에 정확성을 더해나가는 작업이 우려냄이다.


한계점을 상향시키기 위해 당연한 듯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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