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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기 Feb 24. 2020

모든 것이 주님 안에서 평안하기를

사자

국내외 오컬트 영화 시장은 영역을 분명하게 취하며 양분화 되고 있는 추세인 것 같다. 전문적인 견해는 부족하지만, ‘엑소시스트(1973)’, ‘검은 사제들(2015)’과 같이 규모와 범위를 한정시키면서 그 안에서 새로운 현실감을 전달하려는 쪽과, ‘이블 데드(1981)’, ‘사탄의 인형(1988)’처럼 약간의 스플래터(Splatter) 형식을 가미한 쪽이 바로 그것이다. 필자가 선호하는 건 명확한 방향이 분명해 일관성 있게 흘러가는 전자 쪽인데, 오늘 얘기하고자 하는 영화는 여러 가지를 섞어 버무려 볼까하다가 아무래도 아쉬운 맛만을 남긴 것 같다.  


필자가 상영관을 들러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굳이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앞에서 언급한 ‘검은 사제들(2015)’과의 차별성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 때문이었다. 또한 배우 안성기씨의 오컬트물 2번째 도전이자, ‘신부’ 역할에 대한 기대치가 반영된 결정이라는 점도 배제할 수는 없겠다. 주관적으로 그 기대와 희망이 중반 이후부터 급격하게 무너진 게 문제라면 문제이겠지만, 어쨌든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선호의 문제로 주관적인 만큼이나 크게 신경 쓸 부분은 못된다. 그래도 이 영화, 분명 ‘재미’와 ‘액션’의 두 마리 토끼만큼은 놓치지 않았다. 영화 ‘사자(2019)’를 얘기해보자.

영화는 주인공 용후(이찬유 분)의 어린 시절에서 시작한다. 태어나면서 엄마를 여의고 아빠와 할머니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어린 용후는 경찰인 아빠를 끔찍이 사랑하며 의지하고 살아간다. 어느 날 아빠는 괴이한 표정의 음주운전 뺑소니 차량에 의해 사고를 당하게 되고, 용후는 성당을 찾아가 아빠를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지만, 그토록 바라던 아빠는 결국 숨을 거두고 만다. 그 후 20여 년간 ‘신’을 거부한 채 종합격투기 선수로 성장한 용후(박서준 분)에게 손바닥에 원인모를 혈흔이 나타나는 사건이 발생한다. 영화는 결국, 용후가 원인을 찾으려 무당을 찾아가는 등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구마 사제 ‘안신부(안성기 분)’를 만나 구마에 뛰어들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필자가 이 영화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너무나 극명하게 나뉘는 장점과 단점이다.  


우선 ‘장점’부터 얘기해보자. 이 영화에서 긍정적으로 판단됐던 부분은 ‘아역의 새로운 발견’이었다. 어린 용후 역으로 출연했던 ‘이찬유 군’이나 호석 역으로 출연한 ‘정지훈 군’의 연기는 필자에게 마치 영화 ‘곡성(2016)’의 ‘김환희 양’ 못지않은 새로운 보석의 발견 같아 보였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감정의 깊이가 대사와 표현에 고스란히 묻어나 어지간한 성인보다도 나을 정도의 풍부한 연기력을 드러냈다고 생각했다. 다음으로 ‘액션’과 ‘볼거리’를 들 수 있다. ‘구마 사제’를 주인공으로 배치한 오컬트 영화를 표방하고 있음에도, 이와 균형을 맞추기 위해 또 한 명의 주인공을 ‘종합격투기 선수’로 배치했다. 말 그대로 정적인 인물과 동적인 인물을 나란히 조합시켜 영화의 진지함과 화려함 두 가지 모두를 잡고자 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런 시각에서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을 바라본다면 영화의 균형은 잘 잡혀있는 편이다. 말 그대로 화려한 액션을 가미해 관객들에게 제대로 된 ‘재미’를 전달할 수 있거니와, 또 한 편으로는 ‘엑소시즘’에 접근하는 신비함으로 관객들에게 신선한 ‘볼거리’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배우 ‘최우식’에 대한 기대감이다. 용후와 안신부의 첫 만남 장면에서 최신부(최우식 분)가 너무나 어이없게 도망을 가게 되면서 필자는 이후에 뭔가 제대로 된 역할을 부여받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그러한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던 인물이 바로 최신부였다. 결국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얼굴을 드러내기는 했지만 그 정도 역할로는 굳이 왜 ‘최우식’과 같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무게감 있는 배우를 섭외했을까 하는 의문만 가득했다.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 장면은 로마로 떠난 용후와 안신부가 최신부에게 엽서를 보내는 장면으로, 이 장면은 그에게 제대로 된 역할을 부여하기 위한 하나의 행위이자 메시지와 다를 바 없다. 결국 영화는 마지막 엔딩 크레딧을 통해 최신부가 ‘사제’라는 영화로 다시 돌아온다는 관객들을 향한 메시지를 날리며 세계관의 확장에 대한 의지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다음으로 ‘단점’을 얘기해보자. 영화는 ‘엑소시즘’을 다루는 영화의 전형적인 클리셰(Cliche)를 그대로 따랐다. 이 말은 즉, 필자가 서두에서 언급했던 ‘검은 사제들(2015)’과의 차별성을 크게 기대할 수 없었다는 얘기이다. 두 명의 구마 사제에서 시작해 한 명의 사제가 두려움에 도망을 치게 되고, 그 역할을 성흔을 입은 종합격투기 선수가 이어받아 다시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구마의 여정을 이어 나간다는 진부하고 뻔한 이야기. 더군다나 이미 오랜 구마 생활로 녹초가 되어버린 안신부가 더 이상 구마 의식에 대한 힘을 잃어가고 그 역할을 새로운 젊은 용후가 이어받게 되는 스토리는, ‘검은 사제들(2015)’에서 김신부(김윤석 분)의 역할을 최부제(강동원 분)가 이어받는 스토리와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클리셰는 너무나 분명하게 작용한다. 물론 이러한 클리셰가 무조건 나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필자가 이 영화에 기대했던 점과는 대조된다는 점에서 개인적인 아쉬움으로 남았다.  


다음으로 지나친 ‘판타지’를 언급할 수 있겠다. 여타의 ‘엑소시즘’을 다룬 영화들은 그 소재 자체만으로 진지한 접근을 시도했다. 여기에 그러한 진부함을 깨기 위해 ‘판타지’ 요소를 집어넣은 점은 칭찬할만하다. 다만 그 정도가 너무 과했다는 게 개인적인 소견이다. 뱀을 숭배하며 악을 퍼뜨리고자 하는 검은 주교(우도환 분)의 배치는 하나의 ‘악’을 설정한다는 측면에서 괜찮은 스토리라고 생각했지만, 일종의 흑마술과 같은 능력을 보이는 부분, 스스로 심장을 찔러 몸의 변화를 시도해 용후와 결투를 하는 장면 등은 ‘엑소시즘’을 주제로 하는 영화에서 너무 멀리 가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캐스팅의 아쉬움을 얘기하고자 한다. 글의 서두에서 배우 안성기씨의 오컬트물 2번째 도전이자 ‘신부’ 역할인 만큼 이에 대한 기대감이 꽤 컸다는 얘기를 했었는데, 필자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아쉬움이 컸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용후와 직접적으로 비교되어 그 역할의 비중이 지나치게 줄어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때문에 안성기씨의 캐스팅이 적절했을까 라는 의문을 스스로에게 계속 제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만약 이 역할을 한석규씨가 맡았더라면, 그래서 용후와 어느 정도 비슷한 무게감을 끌고 갈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리고 판타지 요소를 좀 더 줄이고 ‘엑소시즘’에 대한 진지함을 제법 중반 이후까지 끌고 갈 수 있었더라면, ‘검은 사제들(2015)’과 비슷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차별성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스스로에게 남았다.  



이 영화에 대해 감히 개인적인 소견을 정리하자면, 기억 속에 계속해서 맴도는 한 문장으로 대변할 수 있을 것 같다. 필자가 이러한 글을 남기는 것 또한 모두 다 ‘주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이자 ‘엑소시즘’에서 표현하는 메시지의 요약이 아닐까 싶다. ‘구마’라는 행위 자체가 워낙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이를 다루는 영화들도 수없이 많이 나왔지만, 모두가 다 ‘현상’에 대한 ‘치료’에 치중할 뿐, ‘왜’라는 ‘원인’에 의문점을 제시한 영화들이 그 동안 별로 없었던 것도 그러한 메시지를 대변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영화 ‘사자(2015)’ 또한 지금까지의 영화들과는 큰 차별성을 표현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많이 안타깝다. 하지만 필자의 의견 자체가 영화의 작품성에 대한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닌 것만큼, 한번쯤 뜨거운 ‘구마’의 세계에 빠져들기를 원하는 분들이 계신다면, 이 영화 ‘사자(2015)’의 익숙함을 직접 느껴보는 것도 괜찮은 경험이 될 것으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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