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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기 Feb 25. 2020

식상한 소재 속 신선한 매력

어쩌다 룸메이트

시간을 소재로 다룬 영화들은 대부분 긴장감을 함께 동반시키는 경우가 많다. 흐르는 시간을 붙잡거나 이를 거스르기 위해 애쓰는 등 시간을 이용해 어떤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내용들이 관객들에게 재미와 흥미를 유발시킴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이는 사람들의 욕망이라기보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소망이기도 하다. 나이를 먹지 않고 영원히 죽지 않는다거나 우리가 가보지 못한 미래에 벌어질 일들을 미리 알고 싶어 하는 것들은 모든 인간들이 가진 자연스러운 궁금증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 때문에 타임 슬립을 다룬 영화들은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시키고 그들의 이목을 쉽게 끄는 편이다. 하지만 같은 주제를 다뤘음에도 좀 더 다른 색감으로 이에 접근한 영화들도 꽤 있다. 욕망보다 치기 어린 사랑의 감성에 좀 더 치중한 <말할 수 없는 비밀>(2007), 그리고 닿을 수 없는 과거와 미래의 옛 추억을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게 만들어주는 <동감>(2000) 또한 그렇다. 그리고 이 작품도 과거와 미래의 충돌이라는 측면에서 다소 SF판타지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천진난만한 웃음과 소소한 소망에 좀 더 무게를 뒀다는 점에서 이들 작품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만 같다. 신예 소륜 감독이 재미난 판타지 영화 한 편을 들고 왔다. 영화 <어쩌다 룸메이트>(2018)이다.



영화는 1999년의 하루를 살아가는 육명(뇌가음 분)과 2018년의 일상을 지내는 소초(동려아 분)의 모습을 그리며 시작한다. 육명은 자신의 사업을 지원해줄 투자자를 찾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눈에는 무리한 그의 계획이 터무니없게만 여겨질 뿐이다. 한편 소초는 부동산과 자신의 결혼을 엮어 돈을 벌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그녀의 이런 순진함은 항상 난관에 부딪히고 결국 사기까지 당하고 마는 지경에 이른다. 두 사람은 이처럼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하루를 살아간다는 점에서 닮은 구석을 드러낸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이 살고 있는 집은 같은 곳이다. 어느 날 그들은 피곤에 지친 몸을 이끌고 잠을 청하게 되는데 잠에서 눈을 떠보니 서로가 같은 공간에 놓여있음을 알게 된다. 하룻밤 사이에 꼬여버린 시공간은 그들을 동시에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존재하게 만들고 1999년을 사는 육명과 2018년을 살아가는 소초의 코미디같은 하루가 시작하게 된다.


영화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흥미로운 스토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SF적인 측면에서 접근하지 아니하고 남녀의 엉뚱발랄한 사랑이야기로 변모시켰다. 여기에 여러 영화의 명장면들을 사이사이에 패러디해 관객들의 감성을 가볍게 건드리고 가는 건 영화가 가진 소소한 재미가 된다. 영화 <인셉션>(2010)에서 꿈과 현실을 구분하기 위해 등장했던 팽이를 살짝 등장시킨 것도 그 대표적인 예이다. 소초는 팽이가 언제 멈출지 모르는 초시계 같다는 말로 슬픈 의미를 부여하지만 육명은 긍정적이다. 오히려 팽이가 빠르게 돌아갈 때는 시간이 거꾸로 흘러간다는 말로 세상의 좋은 모든 것들을 잡아둘 수도 있다는 의미를 함께 부여할 줄 아는 캐릭터이다. 이윽고 등장하는 그들의 자전거 씬은 영화 <첨밀밀>(1996)에 대한 오마주다. 그들의 사랑이 깊어가는 장면을 빠르게 보여주다가도 결국 그들이 함께 연결될 수 없음을 사전에 드러내는 슬픈 장면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이 작품은 분명 타임 슬립 로맨틱 코미디를 지향하지만, 그럼에도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뚜렷하다. 육명과 소초가 복권을 이용해 부족한 돈을 벌려고 시도했지만 시공간의 충돌로 자신들이 가진 복권의 숫자가 사라지는 장면은 현실 속 허상에 대한 감독의 메시지다. 여기에 미래에 성공한 육명이 과거의 육명과의 마주침으로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잃어버릴 위험에 처하자 이에 대한 대응을 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결국 두 사람은 과거와 미래에 속한 자신을 만날 수도 없고 그들이 어떻게든 만지고 싶어 하는 돈은 결국 허상에 지나지 않음을 에둘러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 의미하는 ‘돈’에 대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중요한 시점에서 결국 돈보다 추억이, 사람이, 사랑이 더 소중한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현재의 선택으로 미래의 내가 만들어지듯이 미래의 내가 있기 위해서는 현재의 내가, 그리고 과거의 나를 소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깨우침도 함께 전달하고 있고 말이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두 배우의 캐릭터도 나름의 개성을 갖췄다. 제1회 아시아콘텐츠어워즈 남자배우상을 수상한 배우 뇌가음은 작품에서 ‘육명’ 역을 맡아 배우 동려아와의 제대로 된 호흡을 맞췄다. 조각미남처럼 멋진 외모를 뽐내고 있지는 않지만 1999년 시대의 아련함과 어리숙함을 조화롭게 이뤄내며 순진무구한 표정과 행동으로 관객들의 사랑을 이끌었다. 한편 배우 동려아는 2018년의 현재를 살아가는 ‘소초’ 역을 맡아 철없고 깍쟁이 같은 행동으로 귀여운 연기를 뽐냈다. 거기에 다양한 영화와 방송 출연 등으로 차근차근 쌓아올린 그녀의 연기력은 이번 작품에도 변함없이 그녀만의 매력을 발산시켰다고 할 수 있겠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으로 가난한 시절을 거쳐 온 그녀의 삶이 그녀를 돈에 집착하게 만들었지만, 한편으로 그 안에서 그녀가 가진 매력 또한 잃어버리지 않음이 극 중에서 그녀만의 독특한 개성으로 자리 잡았다고 해도 좋을 것만 같다.



이 영화 <어쩌다 룸메이트>는 극단적인 차이를 보이는 두 시대를 배경으로 각각의 개성이 뚜렷한 남녀가 만나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을 다채로운 시선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여기에 그 속에서 키워나가는 두 사람의 사랑을 한편으로 애틋하게 한편으로 웃음 가득한 재미로 그려내는데도 성공했고 말이다. 또한 필요에 따라 때로는 빠른 속도로 때로는 천천히 속도의 완급 조절을 적절히 해낸 것도 나름의 성공 요인이라 할 수 있겠다. 앞에서 언급한 배우들의 연기 또한 돋보이는 점이다. 두 배우가 주고받는 표정과 행동,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스토리 전개는 물론 아름다운 조화를 이뤄낸 점이 그들을 환상의 콤비로 만들어줄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 <어쩌다 룸메이트>는 타임 슬립 로맨틱 코미디를 중국식으로 잘 버무려 만들어낸 성공작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에 신예 감독다운 참신함과 도전 정신이 적당히 배여 있는 점도 만족할만한 점이다. 어찌 보면 식상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는 소재와 주제를 다뤘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에게 신선함을 안겨줄 수 있는 건 다양한 미장센과 이를 통한 오마주 등을 섞어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는 요소들을 곳곳에 잘 배치해놓았기 때문이다. 익숙하지만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이 다분한 재미난 영화라는 점에 영화가 주는 매력이 가득하다. 쉽게 놓칠 수 있는 요소들로 엮어졌지만 쉽게 놓칠 수 없었음에 감사한 작품, 영화 <어쩌다 룸메이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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