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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기 Feb 26. 2020

거칠게 피어난 야생화처럼... 와일드로즈

와일드로즈

꿈을 향한 길은 언제나 외롭고 척박하다. 선택의 길은 두 가지가 마련되어 있다. ‘용기’와 ‘포기’가 바로 그것이다. 어떤 길에 다다르건 간에 가능성을 대어보기 마련인데 이를 신경 쓰지 않고 앞을 향해 꾸준히 노력하고 도전하는 건 바로 ‘용기’이다. 이와 반대로 확률이란 수치를 냉정히 바라보고 선택을 바꿀 수도 있다. 어떤 선택을 택하던 끝까지 꾸준하게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 그 선택과 용기가 자신에게 인생이란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 이 평범하면서도 진리처럼 들려오는 한 문장을 감동적인 영상과 아름다운 멜로디로 잔잔하게 표현한 작품이 한 편 있다. 영화 <와일드 로즈>(2018)이다.



컨트리 음악에 대한 신뢰가 깊은 주인공 덕분에 귓가에 들려오는 멜로디는 대부분 컨트리 음악이 차지했다. 여기에 수잔나(소피 오코네도 분)의 아이들이 덧붙인 웨스턴 미(美)까지 더해진다면 보다 꽉 찬 멜로디로 화면이 더욱 풍성해진다. 주인공인 로즈 린(제시 버클리 분)은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은 게 아니다. 그저 컨트리 음악에 대한 열정과 집착이 강할 뿐이다. 하지만 화면은 그녀가 무턱대고 열정만을 보여주는 게 아니란 걸 관객들에게 금세 드러낸다. 충분한 실력을 갖춘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지역의 한 전과자에게 꿈의 무대인 미국 내슈빌로 향하는 길은 그리 쉽지 않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걷고자 노력함은 그녀가 가진 그녀만의 힘이다.


수잔나의 도움을 받아 밥 해리스에게 보내기 위한 영상을 찍는 모습은 컨트리풍도 화려함도 그 어떤 것도 배제시킨 채 담백한 아름다움만을 남겼다. 화면 곳곳에 깔끔한 목소리만을 담아 가사와 함께 짙은 호소력이 묻어 나온다. 그녀가 가진 실력뿐만 아니라 그녀가 지금까지 이끌고 온 불량하고 어설픈 엄마로서의 모습을 싹 지워버리는 화면이 아닐 수 없다. 그 와중에도 영상은 양쪽의 집안을 대조시키며 로즈의 처지를 극명하게 드려내려 애를 쓴다. 수잔나의 집이 밝은 햇빛으로 가득한 반면 로즈의 집은 붉은 백열등으로 언제나 어둡다거나, 아이들의 삶과 표정이 대비되는 모습 또한 이를 대변한다. 단순히 자신의 열정을 불태우기 위해 노래를 불렀던 지난날과는 달리, 로즈에게도 노래를 불러야만 하는 이유와 목적이 분명해지는 시점이 되기도 한다. 



재판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그랜드 올 오프리 바에서 환호와 함께 소리 높여 노래 부르는 로즈의 모습은 자유를 향한 찬송이다. 단순히 전자발찌를 떼고 가수의 꿈을 내슈빌에서 키워나갈 수 있다는 기쁨보다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왔다는 기쁨이 보다 더 간접적으로 표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런던의 BBC에서 밥 해리스를 만났을 때 목소리는 가졌지만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질문을 받은 건 그녀에게 주어진 새로운 숙제가 됐다. 기회는 주어졌고 그 일을 해낼 수 있고 없음은 그녀가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임을 감안할 때 앞으로 닥칠 그녀의 여정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을 것임 또한 함께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녀의 두 가지 삶을 놓고 계속해서 저울질 한다. 컨트리 가수로 성공해 내슈빌로 나아가고자 하는 그녀의 오랜 갈망과 그 동안 자신의 실수로 상처를 준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엄마 역할을 해내는 것 말이다. 언제나 그렇듯 상반된 두 가지 삶은 그녀를 시험대에 올려두고 고민에 빠지게 하고, 관객들은 어느 쪽 편을 들던 그녀의 선택을 존중할 수밖에 없게끔 만들어 버린다. 감독 톰 하퍼는 이처럼 조금은 익숙한 한 여성의 심적 성장 스토리를 적절한 연출과 섞어 관객들에게 좀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데, 이때 계속된 고민거리가 그녀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가는지를 살펴보는 것 자체가 영화의 장점이 됨은 물론이다. 



책임감을 가지란 거였지 희망을 뺏으려던 건 아니었다는 엄마의 말은 그래서 더욱 더 무게가 실린다. 준비된 파티 무대를 제대로 망쳐버리고 결국 모든 사실을 실토한 후 본래의 삶으로 돌아갔던 건 그녀의 선택이었지만 그녀가 원했던 건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야생화처럼 거칠게 피어난 그녀의 삶이었지만 영화를 해피엔딩으로 끝맺을 자격은 충분하다. 자신에게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을 갈망하고 있었는지를 충분히 보여주고 있어서이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영화가 가지는 트릭을 통해 영상 메시지를 애써 설명하려 들기 보다는, 우리에게 익숙한 스토리텔링을 잔잔하게 깔아놓아 보다 감성적으로 삶의 거친 환경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끔 만들어준다.


개인적으로 로즈가 엄마의 도움을 받아 내슈빌로 떠나는 여정까지가 적절했다고 봤다. 또 다른 새로운 여정을 풀어놓는 건 관객들을 또 다른 감성으로 감싸줘야 하는 부담감만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토록 갈망하고 바래왔던 내슈빌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는 장면만으로도 아름다운 갈무리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강했다. 하지만 감독은 내슈빌로 이어지는 그녀의 도전을 좀 더 들여다보고 이를 좀 더 아름답게 가꿀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보다 더 단단해지고 보다 더 거칠게 다듬어지는 그녀의 삶을 조명하고픈 마음을 내비친 것 같기도 하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무대를 옮겨 또 다른 삶을 향한 발걸음을 서두르는 그녀의 흔적을 여러 각도에서 뒤쫓는다.



아니나 다를까 투어를 살짝 빠져나와 그랜드 올 오프리 홀에서 혼자 부르는 그녀의 무대는 영화의 클라이맥스 장면이 됐다. 그곳에 다다르면 나의 길을 알아볼 거라고 외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굳은 다짐과 함께 확신에 깃든 힘이 있다. 결국 그곳에 다다라서야 자신이 어디로 향해야 할지 그 길을 깨달았다는 감독이 주는 메시지는 관객들의 가슴을 울컥거리게 만들며 한 편의 감동을 선사해준다. 영화는 이처럼 스토리 전체에 흠을 주지 않고도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을 수 있도록 관객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는 장면을 풍성하게 마련했다. 삶의 방향이 어디로 향하든 자신에게 주어진 삶과 길을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 그게 해답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던지기도 한다. 관객들 스스로 해답을 찾지 않고도 깨달을 수 있도록 혜안을 넌지시 보여주기 때문이다.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거울에 비친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영화, <와일드 로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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