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외로움은 입을 다물게 만든다. 아무리 외쳐 봐도 어차피 닿지 않을 테니. 그리고 거울을 바라본다. 거울 속 내 모습에 한껏 부끄러워져 스스로를 구석으로 몰아세운다. 왜 나에게 이런 상황이 주어졌을까. 무엇이 잘못 된 걸까. 그렇게 상대방이 아닌 나에게도 문제를 몰아간다. 그렇게 외로움은 한 사람을 철저하게 어두움 속에 가두어 버린다. 그리고 진실 또한 너무나 쉽게 묻혀 버린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든 진실을 알고 싶어 한다. 그 결과가 우리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가던지 간에 진실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구는 누군가에 대한 배려조차 없이 그저 단순하고 직선적이다. 이와 반면, 진실을 숨기고자 애쓰는 이들도 있다. 아무리 아는 것이 힘이라 한들,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인 것도 있는 법이다. 그들은 그렇게 주장하며 자신의 생각과 행위를 스스로 정당화시켜 버린다. 신이 만들어 낸 창조물의 추악한 진실, 이 진실을 파고들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한 이들이 있다. 영화 <스포트라이트>(2015)다.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미국 보스턴 지역을 대표하는 언론 ‘보스턴 글로브’ 지의 스포트라이트 팀이 새로 발령받은 대표 마티 배런(리브 슈라이버 분)의 지시에 따라, 보스턴 지역 내 가톨릭 교구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을 집중 취재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가 다루고자 하는 내용은 이처럼 역동적인데 반해 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은 매우 담담하고 잔잔하게 흐른다. 토마스 맥카시 감독은 생각지도 못한 추악한 범죄가 개개인의 인생에 커다란 상처를 준 반면, 이를 알고 있음에도 묵인하고 덮어버린 권력이 종교라는 이름으로 죄를 인정하지 않는 과정을 세세하게 하지만 담담하게 그리고자 노력했다. 그의 연출 방향은 이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왁자지껄 떠들어대지도 않고 배우들은 우왕좌왕 분주하지만도 않다. 스포트라이트 팀이 취재하는 과정은 그들이 다루고 있는 사건의 무게에 비해 꽤나 침착하고 세밀한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이 가진 각본의 힘은 생각보다 크다. 영화가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카메라나 연기보다 그들이 나누는 대사가 풀어내는 서술적 가치에 좀 더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작품은 제88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각본상을 수상하며 그 명성을 익히 알렸다. 이 영화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널리즘의 진수를 보여줬다는 찬사는 배제하고라도 이 영화는 한 사건을 끈질기게 파고드는 관점의 측면을 제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 그 가치가 분명한 건 확실하다. 뿐만 아니라 각각의 등장인물이 가진 캐릭터가 나름의 개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음을 표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 기운을 관객들이 충분히 즐길 수 있다. 팀장을 맡은 월터(마이클 키튼 분)가 팀을 이끌어가는 방식은 무게감이다. 팀원들이 자유롭게 세밀하게 취재할 수 있도록 스스로 우산이 되어주는 역할이다. 말 그대로 스포트라이트 팀의 대들보로서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 분명하게 각인되고 있다. 떠들썩하지도 않고 큰 소리를 외쳐대지도 않지만 그의 언행은 분명 충분한 무게를 안고 간다.
각각의 팀원들이 가지는 개성 또한 만만치 않다. 사샤(레이첼 맥아담스 분)는 조용히 끈질기다. 수많은 피해자들을 만나며 그들의 얘기를 듣고 감정을 감싸 안아주는 역할을 맡았다. 집요함으로 제대로 된 뉴스를 얻어내는 용기 또한 비추고 있고 말이다. 이와 유사하지만 또 다른 개성을 드러내는 마이크(마크 러팔로 분)는 그런 끈질김을 극대화한 대표적인 캐릭터다. 그는 일에 대한 집착으로 가족과 떨어져 지낸다. 제때 식사도 거를 정도로 사건에 대한 집념이 강해 우여곡절 끝에 법원이 허가한 비공개 문서를 가장 먼저 습득하고자 하룻밤을 그 앞에서 꼬박 새울 정도의 노력을 선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 모두가 카메라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아닌 수채화와 같은 잔잔한 화면으로 이끌어냄은 감독이 의도한 연출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보다 역동적인 움직임과 강렬한 음악 대신에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화면 자체에 비쳐진 그들의 모습에서 이 사건의 무게감을 가슴 한 곳에서 끓어오르듯 느낄 수 있다는 게 영화의 장점이 된다.
분명 아쉬운 점도 존재한다.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언급한 장점들이 거울에 비친 것과 같이 단점으로 받아들여지는 순간도 있다. 캐릭터의 개성이 대사와 연기 자체에 눈에 띄게 묻어나지 않는다던지, 그리고 각각의 취재 과정이 너무나 담담하게 흘러 피해자들의 속마음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점은 어쩌면 이 영화가 씬에 따라 조금씩 들었다 놓는 연출을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스스로 물음표를 달게 만들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영화는 스포트라이트 팀의 취재 과정을 오롯이 보여주는데 대부분의 러닝 타임을 활용하고 있는데 비해, 관객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긴장감의 공간을 고려했을 때 적어도 중간 중간에 감정을 끌어올릴 수 있는 여지, 즉 피해자의 피해 과정의 세세한 설명과 묘사, 또는 취재 과정에서의 어렵고 힘든 모습을 좀 더 세부적으로 나타내는 것도 필요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또한 스포트라이트 팀의 취재 과정에만 집중하지 말고 피해자의 입장과 가톨릭 교구가 변명을 늘어놓는 입장들을 함께 다각도로 비춰줬다면 관객들이 사건을 보다 입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 작품은 가톨릭 교구 내에서 오랜 기간 동안 벌어진 아동 성추행 사건을 미국의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 지의 스포트라이트 팀이 세밀하고 끈질기게 추적해 보도한 실화를 담았다. 전 세계에 가톨릭 교구의 추악한 내면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었다는 점에서 그 무게만큼이나 충격적인 보도이기에 충분히 역동적이고 무거운 화면으로 가득히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감독 토마스 맥카시는 이와 정 반대의 연출 방식을 택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각본의 치밀함과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신뢰가 전제됐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실화였기 때문에 그 무게를 온전히 관객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고 실제 롤 모델이 있음으로 이들의 행적을 화면에 충실하게 담을 수 있었음은 이 작품이 다큐멘터리 못지않게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기자들의 집요함을 충분히 드러내는데 기여했다고 본다. 뿐만 아니라 진정한 저널리즘의 가치가 무엇인지 낮고 무겁게, 그리고 보다 분명한 목소리를 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가 가진 가치가 충분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던 작품, 영화 <스포트라이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