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도는 트렌드
유행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고등학생 시절 교복의 바지통을 아주 크게 키워 교복이 아닌 트레이닝복처럼 보이는게 유행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고 한 2년이 채 안흘러 한참 바지통을 줄이는게 멋스러워 보였다. 그러더니 스키니진이 정말 생필품처럼 자리잡았다. 이 유행은 대단히 오래갔다. 이제는 또 통 큰 바지가 느낌있어 보인다.
전세계적으로 안경의 유행에는 일정한 흐름이 있다. 동아시아에 속하는 한국은 세계적 트렌드에서 조금 벗어나 있었다. 한국 특유의 빠른 발전 속도나 생활패턴, 얼굴의 구조가 그 이유일 것이다. 그래도 최근에는 많이 비슷해졌다.
음.. 어디서 부터 이야기를 해야할까. 내가 태어나고 기억이 닿는 때부터 이야기하는게 진실된 것 같다.
90년대 후반부터 한동안 무테, 반무테가 지배적이었다. 내구성으로나 광학적으로나 단점이 많은 구조의 안경임에도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었다. 마치 안경을 끼면 지력이 상승하고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움직임만 하는 똑똑한 사람으로 보였으려나. 사실 아직도 이해가지 않는다. 그저 깨질듯이 위태로운 것이 아름다워보였다. 나도 렌즈가 나사하나에 겨우 연결되어 있는 반무테 안경을 끼고 다니다 얼마나 부러뜨렸는지 셀 수도 없다. 안경렌즈가격을 생각하면 진짜 부모님한테 못할 짓을 한것 같다.
2002년 겨울연가에서 배용준 배우가 사각의 그리고 조금 납작한 안경을 주로 쓰고 나왔다. 당시에는 배용준 헤어스타일이 훨씬 더 주목 받았지만 안경트렌드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주었다. 한동안 금테든 플라스틱이든 납작하고 네모난 테가 한국에서 보통의 안경이었다. 이 유행의 또다른 아이콘이 있다. 성시경이다. 락발라드와 힙합, 댄스곡들이 유행하던 시절, 부드러운 발라더가 끼는 납작한 뿔테 안경은 고고한 매력을 뿜어냈다.
오랫동안 유재석씨가 착용해오는 검고 납작한 뿔테도 그때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10년을 넘도록 같은 스타일을 고수하는 중이다. 아무튼 그 후로 윤계상, 최다니엘 등 안경이 트레이드마크인 연예인들이 등장하면서 어쩐지 렌즈의 높이도 점차 커졌다.
그리고 2012년 말, 늘 앞서가던 류승범 배우가 영화 용의자X에서 베리스 사의 아이언모델을 착용하면서 동글이 안경이 전국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영화가 큰 흥행을 기록하지는 않았으나 많은 데서 언급이 될 정도로 정말 이 분만큼 안경이 잘어울리는 사람도 드물다. 거의 모든 방송에서 안경을 쓰는 연예인들은 다 이런 동그리 스타일 안경을 착용했다.
그것도 잠시.. 2013년 SBS 최고의 아웃풋, 별그대에서 전지현 배우가 착용하고 나온 젠틀몬스터 선글라스가 아시아일대를 휩쓸었다. 선글라스와 더불어 젠틀몬스터의 뿔테안경도 안경을 쓰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쯤은 가져야 할것만 같은 아이템이 되었다. 개성 강한 브랜드이미지로 브랜드 자체가 트렌드가 되었다.
무거워서인지 지나치게 강렬해서인지 안경에서는 다소 반대의 흐름이 생겨났다. 베리스의 안경처럼 얇고 동그란 테의 수요가 폭팔했다. 이 유행은 티타늄의 가공법 발달과 맞물려 제법 오래가는 중이다. 특히 올해에는 보잉선글라스가 변형된 스타일인 투브릿지를 찾는 사람도 많아졌다.
거기에 지난 대선 때, 대선주자들의 안경이 주목받으며 얇고 가벼운 안경들을 찾는 사람이 더욱 더 많아졌다. 이제는 연예인 뿐만 아니라 문대통령, 이재용 등 다양한 분야의 유명인들이 패션의 아이콘으로 주목받고 있다.
어쩐지 슬슬 다시 뿔테를 쓰고 싶네? 너네는 뿔테 없어?
어디선가 이런 얘기를 들었다. 그것도 이틀에 걸쳐 5번을 들었다. 깜짝 놀랐다. 나도 금속으로 안경을 만들다가 어쩐지 뿔테가 그리워지던 참이었다. 유행이라는게 돌고 돈다지만 바로 옆에, 그것도 아주 친하고 트렌드의 선두주자라 느껴지는 분들이 그런말을 하니 어쩐지 인정받는 기분이다. 말은 안했지만 조심스레 뿔테를 만들고 있던 참이다. 이제는 슬슬 뿔테로 돌아갈 시간이다. 글을 5년 뒤에 썼다면 맨 마지막엔 뿔테가 있지 않았을까.
정성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