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일상적이지 않은 곳
나는 커피를 좋아하고 책이라면 만화책을 좋아하는 편이라, 무언가 읽을 때는 카페를 가거나 만화책방을 가는게 일반적이었다. 아니면 비슷한 이름의 독서실. 공부를 하기 위한 독서실을 많이 갔다. 이렇다보니 도서관이란 곳은 나에게 낯설고 일상적이지 않은 공간이다.
도서관에 대한 기억을 떠올려보자니 두 가지 장면이 떠오른다.
첫 번째는 꽤나 흐린 기억인데, 사촌을 따라서 걸어서 15분거리의 도서관에 갔던 기억이 있다. 대구 남부도서관이었을 거다. 같은 해에 태어났지만 빠른 년생이었던 내 사촌이 형으로서 알려주는 새로운 공간의 느낌이다.ㄱ,ㄴ,ㄷ,ㄹ .. 아마도 도서를 찾는 법을 그때 처음 알게되었을 것이다. 그때는 내가 그 공간에 있는게 참 낯설었다. 예정 없이 간 곳이었고, 실제로 초대 받지 않은 손님이었다. 책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왠지 주인 몰래 들어온 것만 같았다. 잘 정돈된 느낌. 불쑥 들어온 도둑처럼 초대받지 않은 내가 그들의 소중한 것을 지켜보는 듯한 순간이었다. 혹시나 내가 책을 건드려 그들만의 약속 같은 정렬을 흐뜨려 놓을까봐 무서웠다. 그래서 꽂혀있는 책들을 전혀 건들지 못했다. 내 기억 속 그곳은 어쩐지 푸르고 낯선 조명이었고 그 아래 소중히 보관되어온 책들, 그 사이의 고요함에 왠지 모를 긴장감이 있었다. 그리고 살짝 차가운 공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두 번째 장면은 대학교에서의 중앙도서관이다. 사실 꽤나 자주 갔었기 때문에 장면이라기 보다 장소로 기억한다. 우리 학교에는 미리 시간을 예약해야 사용할 수 있는 독서실이 있었지만, 목조형가구학과라는 전공의 공예학도인 나는 실기 작업물이 우선이었다. 게다가 내가 하던 작업은 항상 마무리되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독서실 보다는, 자리만 나면 앉을 수 있고 위치도 가까웠던 도서관을 선택했다.
그때의 나는 실기평가를 위한 작업과 필기과목의 공부를 병행해야 하는 공예학도로서의 숙명이 있었다. 시간을 쪼개쓰느라 한창 피곤한 와중에도, 실기 작업을 할 때에는 커다란 기계들 사이에서 다치지 않으려고 절대적으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나무 탄내와 톱밥을 코와 입으로 흡수하며 작업을 끝내고 난 뒤, 팔과 얼굴을 대충 씻고 머리를 털고 나서야 겨우 도서관으로 갈 수 있었다. 아마도 숨길 수 없는 땀내와 나무냄새, 본드냄새가 내 몸에서 났을 것이다. 나 스스로가 후각에 둔감한 것을 미리 알았기 때문에 늘 신경이 쓰였다. 그 공간에 나의 냄새를 퍼뜨리고 싶지 않았다. 열심히 땀을 닦고 옷을 갈아입기도 했다. 괜히 향수도 뿌렸던 것 같다. 그게 도서관에 대한 내 최소한의 에티켓이었다. 그만큼 나에게 도서관은 굉장히 고요하고 정돈된 곳이었다.
들어갈 때는 그 난리를 치고 난 후, 긴장이 풀려버린 내겐 한편으로 참 편안한 곳이었다. 나는 도서관 의자에 앉은 채, 불편한 자세로 세상 달콤한 쪽잠을 자고 난 후 공부를 시작했다.
누군가는 도서관에서 오래된 책 냄새, 종이 냄새가 난다고 하는데 나는 나의 흔적과 냄새를 숨기기 바빴다. 어떤 냄새가 나는 지에 대한 기억은 일절 없다. 다만 상상만 해볼 뿐이다.
지금 내 책장에 꽂혀있는 책에 코를 박으면 느껴지는 냄새처럼 건조하고 정겨운 냄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