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Noseless

사람냄새가 나던 H커피

합정동에서부터 함께 보내온 시간

by 안테나맨

지난 10월 1일. 내가 정말 좋아한 H*커피작업실이 마지막을 알렸다.


합정동에 아이웨어브랜드 매장을 내고 어설프게나마 무언가 해보려던 2019년, 골목길 맞은편에 커피가게가 하나 생겼다. 마냥 카페라고 하기엔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작았고, 그 대신에 원두를 볶는 커다란 기계들이 있었다. 그 가게의 주인장이었던 H씨는 늘 밝은 미소를 가진 패기 넘치는 사람이었다. 처음 오픈할 때 자연스레 인사를 나누고는 가게 입구가 서로 마주보며 있었기에 많이 친해졌다.


스크린샷 2025-10-12 162031.png


그는 아침마다 늘 원두를 볶았다. 날마다 달라지는 온도와 습도, 가져온 원두의 상태를 고려하여 최상의 맛을 만들어내는 작업이었다. 진짜 바리스타였다. 날마다 맛을 내기 위한 테스트용 커피를 한두잔 주러 왔다. 많은 날에는 서너잔씩 받기도 했다. 커피를 좋아했던 나는 그게 참 고맙고 좋았다. 게다가 엄청 맛있었다. 한잔 한잔 그 맛에 대해서 설명을 꼭 덧붙여주었는데, 끝맛이 자두맛이 난다고 하면 정말 자두 맛이 났다. 정말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신기한 세계였다.


그 언젠가 과거에 카페 인테리어 작업을 도울 때, 또다른 커피 전문가에게 커피에 대해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배웠던 커피 지식과 남다른 경험이 있어 스스로 꽤나 알고 있다고 자부했었다. 그런데 H씨는 차원이 달랐다. 아직도 나에겐 진짜 최고의 바리스타로 남아있다. 늘 밝게 웃으며 그날의 커피 맛을 소개해주는 H씨가 있었기에 날마다의 커피들을 더 맛있게 즐겼던 것 같다. 그렇게 길들여진 나는 프랜차이즈 커피를 좀 피하게 되었다. 미팅을 위한 공간이 필요할 때나 기프티콘을 쓸 때만 가게 되었다. 아무래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하는 사람의 커피를 알게 되서일까, 그런게 좋다. 사람냄새가 나는 커피. H씨 덕에 그것을 알아버렸다.


6af06364b44f3e39b79f336be91b8c6f.jpg


우리 매장은 합정동에서 용산으로 이사를 갔고, H*커피작업실도 다른 곳에서 다른 형태의 매장을 내게 되었다. 그렇게 연락이 뜸하다 다시 만날 기회를 못가진 채로 지난 1일 내 최애 커피가 막을 내렸다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게 되었다. 단순히 커피를 판매한 게 아니라 함께 보내온 시간들이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하는 그의 말이 참 마음이 쓰인다.






살다보면 커피 뿐만 아니라 무언가 소비할 때, 그것을 만든 사람이나 이야기를 알면 더 애정이 간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사람냄새가 나는 것에 끌리기 마련인 것 같다. 내 삶에 굉장히 중요한 '커피'라는 부분에서 가장 사람냄새가 났던 H*커피작업실이 벌써 그립다. 맡을 수 있을 때 더 많이 맡아둘껄. 그런 생각이 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도서관 냄새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