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장녀로 살아남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딸-딸-아들 집안의 큰딸은 더더욱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여동생 하나, 남동생 하나 있는 소현은 이 시대의 진정한 K-장녀다. 21세기가 된 게 언제인데 세상이 큰딸에게 기대하는 바는 아직도 20세기 이전을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소현 역시 어려서부터 ‘넌 우리 집안의 기둥이야’ ‘동생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지’부터 시작해서 ‘큰딸은 살림 밑천이야’라는 고리짝적 이야기까지 늘 듣고 살았다.
자연스럽게 알 수 없는 책임감에 시달렸고 뭐든지 잘하는 아이여야만 했다. 동생들은 미술, 요리, 체육 등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향해 갈 수 있었다. 심지어 남동생은 막내라는 이유만으로 그냥 사랑받는 행운아였다. 하지만 소현은 그러면 안 되는 K-장녀였다.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고 동생들의 모범이 될 의무를 띄고 이 땅에 태어난 존재였다. 부모님이 해라 해라 그러지 않아도 열심히 했고, 동생들이 원하지 않아도 알아서 매사 양보했다.
가족끼리 방을 나눌 때도 그랬다. 다섯 식구가 사는 집에 항상 방은 많아야 3개였고, 동생 하나는 남자였다. 남동생이 어릴 때는 엄마와 함께 방을 썼지만 언제까지나 그럴 수만은 없었다. 자연스럽게 성별이 같은 소현과 여동생이 한 방으로 묶였고, 남동생이 떡하니 방 하나를 차지하는 부당한 상황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공부는 열심히 해야 했고 방은 양보해야 했다. 그래도 아무 말하지 않았다.
바쁜 부모님 대신 서로 의지하면서 챙겨주는 동생들이 있어서 든든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자기만의 방을 갖고 싶었다. 무슨 버지니아 울프도 아니고 혼자 고독을 씹고 싶은 문학소녀도 아니었지만 친구들과 키득거리는 통화 한 번 편하게 못해보는 집이 답답한 것도 사실이었다.
당연히 화장실은 딱 하나였다. 혼자만의 화장실에서 우아하게 머리 감고 학교로 향하는 아침은 꿈도 꿀 수 없었다. 한창 학교 다니는 아이 셋에 맞벌이하는 부모님까지 출근, 등교 시간이 겹친 소현의 집 화장실은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반은 칫솔 물고 밖에서 기다리면 하나는 세수하고 하나는 옆에서 볼 일 보는 식이었다.
전주에 위치한 상산고로 진학하면서 기숙사로 들어가게 됐다. 드디어 좁은 집을 벗어나나 싶었다. 그런데 웬걸,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내 방만큼 좁은 방을 5명이 함께 쓰는 구조였다. 그것도 동생도 아닌, 말만한 고등학생 다섯이었다. 매일 나오는 머리카락만 산더미였다. 모아서 매주 가발 하나씩 만들어도 될 정도였다.
화장실 줄 서는 건 집에서나 여기서나 마찬가지였다. 볼 일 좀 마음 편히 봐 보는 게 소원이란 생각에 찔끔 눈물이 나면서, 나 지금 뭐 하는 거지, 하는 자괴감에 수없이 휩싸였다. 이 생활은 대학교까지 계속됐다. 함께 방을 쓰는 인원수는 둘로 확 줄었지만 좁아터지고 사생활 보장 안 되긴 마찬가지였다. 여기도 답답, 저기도 답답했다.
혼자만의 방을 선사한 건 뜻밖에도 바다였다. 모든 해기사들에겐 각자 방이 하나씩 제공된다. 소현은 배를 타면서 마침내 20여 년만에 자기 방을 갖게 됐다. 2030 청춘들이 취업난에 허덕이는 이 시국에, 심지어 코로나까지 겹쳐 모든 경제활동이 올스톱된 시점에 당당히 자기 힘으로 취직해서 얻은 방이었다. 생애 첫 혼자만의 방문을 열어보면서 소현은 배 타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잊고 살았던 K-장녀의 자아를 이곳에서 찾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