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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창가 Jun 02. 2021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가를 알아들은 아기

출처: pinterest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혼자 남아 집을 보던 아기가 바닷소리를 듣고 저절로 잠이 들었다는 기적과도 같은 이야기.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자장가 ‘섬집 아기’다. 징그럽게 잠 안 자는 아기를 키워본 엄마라면 이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지 공감할 것이다. 자장가 속에서나 나오는,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는 전설일 뿐이라고 툴툴대면서.  

  

 

그런데 기적은 정말 일어나는 경우도 있어서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그리고 그 기적이 바로 소현에게 일어났었다. 소현은 바다와는 아무 상관없는 서울에서 태어나 쭉 수도권에서 자랐다. 물을 엄청 무서워해서 수영은 아예 배우지 않았다. 여름철에 바다로 피서 가면 열심히 헤엄치며 노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물에 살짝 발만 담갔다가 얼른 물러나곤 했다.     



바다가 무서웠지만 왠지 싫지는 않았다. 물에 들어가는 게 무서웠을 뿐 바라보는 건 좋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푸른 바다를 보고 있으면 가슴속까지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소현은 그런 느낌이 좋았다. 하지만 누구나 바다에서 그런 기분을 느끼기 때문에 자기가 바다를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른들의 이야기는 달랐다. 어른들 기억 속 소현은 태어나서부터 바다를 ‘특별히’ 좋아하는 아이였다. 사연은 이랬다.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모두 하나같이 소현은 참 키우기 힘든 아이였다고 입을 모았다. 아기가 잠만 잘 자면 효도한다는 말이 있는데 소현은 아예 잠을 자지 않는 아기였다. 요즘 아기 엄마들 말로 ‘등센서’를 장착하고 태어난 소현은 등을 바닥에 대기만 하면 번쩍 눈을 뜨고 자지러지게 울었다.  

 

  

24시간 내내 잠도 안 자고 밥도 안 먹고 내내 울기만 하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엄마는 첫아기였던 소현을 외할머니와 함께 부둥켜안고 울면서 키웠다. 여자 셋이 밤마다 번갈아 가면서 눈물 콧물을 흘리는 나날들이었다. 그러다가 엄마가 직장에 나가면서 소현은 외할머니 댁에서 지내게 됐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외삼촌은 소현이 밤마다 울어대는 통에 아예 잠을 못 잤다고 토로했다.     



결국 엄마는 소현을 잠시 친가에 보내기로 했다. 외가는 가까워서 아침에 맡기고 저녁에 데려올 수 있었지만 친가는 멀어서 맡겨 놓으면 주말에나 간신히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가까이에 두려고 했지만 소현이 밤마다 어른들의 잠을 싹 빼앗아가는 통에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그 정도로 소현의 잠투정은 극성이었다.


     

소현의 할머니 댁은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 제주도였다. 아빠가 대학 때 서울로 올라온 뒤 명절 이외에는 바빠서 거의 방문하지 못했던 아빠의 고향이었다. 소현은 비행기 안에서도 통제 불능이었다. 1시간 내내 발악을 하며 울어댔다. 기진맥진한 엄마는 소현을 품에 안은 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시 데리고 서울로 가야 하나 갈등했다.     




그런데 소현이 공항 밖으로 나오자마자 갑자기 울음을 뚝 그쳤다. 엄마는 지금도 그 순간을 무척 잘 기억한다. 정말 신기했다고 한다. 소현이 제주도 섬을 밟자마자 거짓말처럼 방긋방긋 웃은 것이었다. 엄마는 소현이 제발 조금이라도 덜 울길 바라면서 친가에 맡겼다. 친할머니는 소현에 대해 미리 설명을 충분히 들으셔서 마음의 준비를 한 상태였다. 비장한 각오로 소현을 받은 할머니에게서 며칠 뒤 전화가 걸려왔다. 시작부터 핀잔이었다.     




“애가 이렇게 잘 자는데 넌 뭐가 힘들다고 그러니.”     




소현이 잠을 너무 잘 잔다는 것이었다. 엄마는 할 말을 잃었다. 일단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는 그렇게 안 자던 애가 마침내 자기 집을 찾아가니 마음이 편안한가 보다고 시어머니의 노고에 에둘러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소현을 재운 건 할머니도 아니었고 아빠의 고향집도 아니었다.



바다였다.



익숙한 엄마와 외할머니가 있을 때도 칭얼대던 소현이 난생처음 보는 친할머니 곁에서 울음을 멈춘 건 바다 때문이었다. 나중에 들은 말인데 소현이 잠을 안 잘 때 집 앞 바다로 업고 나가면 바로 잠들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 업어가도 모를 만큼 쿨쿨. 할머니가 아빠를 키울 때도 불렀던 자장가 ‘섬집 아기’는 부를 필요도 없었다고 한다. 거의 기적 수준이었다.     



할머니 입에서 “역시 육지 것들은 모르는 바다의 맛을 아네!”라는 말이 기분 좋게 나올 만큼 소현은 제주도에서 잘 먹고 잘 잤다. 바다만 보여주면 새근새근 잠들던 소현은 자라서 1년 내내 바다 위에서 일하는 어른이 됐다. 그리고 이제는 바다에 태풍이 몰아쳐도 모르고 쿨쿨 잔다. 마치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가를 듣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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