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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창가 Jun 21. 2021

가슴이 터질 것 같았던 첫 항해



“얼른 먹어, 시간 다 됐다.”     



아빠의 재촉에 소현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까부터 열 번도 넘게 쳐다본 시계를 다시 보았다. 아주 잠깐 딴생각을 한 것 같은데 어느새 일어나야 할 시간이었다. 탁자 위 짜장면은 이미 불어 터져 떡처럼 한 덩어리로 뭉쳐져 있었다. 아빠는 조금이라도 먹이고 싶은 마음에 젓가락으로 열심히 그 정체모를 음식을 헤쳤다. 하지만 소현은 먹을 기분이 아니었다. 정말이지 국수 한 가닥도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인천 차이나타운에서도 제일 맛있다고 소문난 중국집이었지만 유명세가 소현의 긴장을 풀어주지는 못했다.     



2018년 1월 17일은 소현에게 기념비 같은 날이었다. 바로 대망의 첫 항해 실습날이기 때문이다. 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해양대 3학년은 대부분 실습을 한다. 소현의 학과는 한 학기는 회사 실습, 한 학기는 학교 배 실습을 한다. 간혹 회사 실습을 못 간 학생은 두 학기 모두 학교 배 실습을 하기도 한다. 이날은 회사 실습 첫날이자 해양대 입학 후 처음으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날이었다. 대부분 회사 선박은 실기사 1명만 태우기 때문에 소현 혼자 타는 것이라 부담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또 앞으로 6개월 간 망망대해를 떠다니며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식욕이 싹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땅에서 먹는 밥인데 조금이라도 먹어야지.”     



안쓰러워하는 아빠의 얼굴과 ‘마지막’이라는 단어에 그만 눈물이 툭 떨어질 뻔했다. 결국 소현은 짜장면을 한 젓가락도 입에 넣지 못한 채 허겁지겁 인천항 집결 장소로 달려갔다. 간단한 확인을 마친 소현은 드디어 첫 항해를 책임질 거대한 선박에 승선했다. 배에 오르면서 선배들에게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던 말을 입 속으로 되뇌었다.      



첫인상이 제일 중요해. 그러니까 무조건 인사를 크게 해.     



선박 위 기관사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자 소현은 그 넓은 배가 떠나가라 냅다 소리를 질렀다.     



“안녕하십니까!!!”     



그러자 기관사들이 깜짝 놀란 듯 흘긋 돌아보더니 면박을 주었다.     



“조용히 좀 할래?”     



칭찬은 몰라도 나쁜 인상은 주지 않으리라 확신했던 소현은 당황했다. 이게 아닌데. 하지만 돌아가면서 쳐다보는 기관사들의 표정이 과히 좋지 않았다. 소현은 배에 오르자마자 바늘방석이었다. 6개월 동안 장난 아니겠구나 라는 절망감이 훅 스쳐 지나갔다.     



그 뒤로는 혼이 쏙 빠진 채로 보냈다. 배 구조부터 대략난감이었다. 책으로 미리 익히고 갔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론과 실제는 달랐다. 무엇보다 독특한 엘리베이터 사용법을 숙지하지 못해 진땀을 뺐다. 배의 엘리베이터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엘리베이터와 달리 문이 하나 더 있었다. 일반 엘리베이터는 자동문이 열리면 그냥 타고 내리면 되는데 여기는 자동문이 열린 다음 방문처럼 손잡이를 돌려서 열어야 하는 문이 하나 더 있었다. 처음엔 너무 당황해서 엘리베이터에 갇힌 줄 알고 패닉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이러니 방을 배정받고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한 건 당연했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몰랐다. 기관실, 방, 식당만 왔다 갔다 했다. 종갓집에 갓 시집 온 며느리처럼 층층시하 눈치 보고 일 배우느라 허리 한 번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호주에 입항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허둥대는 사이 벌써 2주가 흘러간 것이었다. 소현은 선원들과 다 같이 갑판으로 올라갔다. 승선하고 처음으로 제대로 보는 바다였다. 저 멀리 한눈에도 이국적인 호주 글래드스톤항이 눈에 들어왔다. 셀 수 없이 많은 바다새들이 육지 근처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장관이었다. 소현은 그제야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아, 내가 진짜 태평양을 건너는 배를 타고 있구나.    


 

겨우 2주 만에 보는 육지인데 코끝이 시릴 만큼 반가웠다. 소현의 그런 기분을 다 알고 있다는 듯 기관장님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사실 첫날 면박을 준 건 사관들끼리 실습생 놀리려고 장난친 거였다고. 너 아주 잘하고 있다고.     



처음 보는 태평양, 처음 방문하는 호주, 처음 만난 바다새떼, 모든 게 처음이었지만 출발이 제법 괜찮다는 확신이 생겼다. 문득 2주 전 젓가락도 못 댄 짜장면이 못 견디게 그리웠다. 지금 이 기분이면 곱빼기로도 먹을 수 있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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