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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창가 Jun 24. 2021

실습의 추억 - 토하면서 수업받기



해양대 3학년은 실습하는 해다. 과마다 다르지만 소현의 학과는 1년에 총 두 번 실습 기회를 갖는다. 한 학기는 학교 배 실습, 한 학기는 회사 실습이다. 회사 실습에 비해 3학년 동기들이 함께 하는 학교 배 실습은 부담감이 훨씬 덜하다.     



학교 실습은 학교 소유의 실습선에서 받는다. 한국 해양대는 ‘한나라호’와 ‘한바다호’라는 두 척의 실습선을 갖고 있는데 소현은 한나라호에서 실습했다. 학교 실습선은 교육만을 목적으로 한 배라서 가끔 교육을 위한 항해 이외에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 내 부두에 정박해 있다. 공간이 배라는 점만 다를 뿐 사실 배 모양 기숙사라고 생각하면 된다. 기숙사이기 때문에 당연히 주말마다 외출과 외박도 가능하다.   


  

소현은 실습이 시작되면서 기숙사처럼 방 배정을 받고 승선했다. 배 안에는 1등, 2등, 3등 기관사 및 항해사, 교육 교관이 있어서 학생들의 교육 및 각종 점검을 관리했다. 그들은 교대로 당직을 서며 저녁과 아침 청소 점검도 빠뜨리지 않고 철저히 진행했다.     



장소가 배로 이동했을 뿐 학교와 똑같이 수업도 받았다. 수업은 학교 실습과 회사 실습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사실 회사 실습은 현장 투입이 주목적이라서 체계적이고 제대로 된 교육과는 거리가 멀다. 아무것도 모르고 책만 좀 읽고 온 대학생을 그냥 현장에 던져놓고 기름 닦는 것부터 가르치는 셈이다. 요리의 고수가 요리를 배우러 온 사람에게 설거지를 왕창 시키는 것과 똑같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학교 실습 땐 교수님이 함께 승선했다. 교육을 위한 학교 배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로 교수님이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다. 기관실에서 기기를 같이 돌려 보고, 실제 부품을 가져와 구조를 보여주었다. 덕분에 책에서 이론으로만 접했던 내용들은 좀 더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학교 배 안에는 ‘Lecture room’이라는 강의실이 따로 있어서 그 안에서 이론적인 교육을 받은 다음 기관실로 가서 배운 내용을 눈으로 확인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하루 수업이 끝나면 교수님은 배 밖으로 퇴근했다가 아침에 다시 배로 출근했다. 사실 1년 내내 부두에 매여 있는 배에서 이루어지는 생활이라 공간을 이동했다는 점만 빼면 대학교 생활과 다를 건 없었다. 그런데 본격적인 항해가 시작되자 확 달라졌다.



출항과 함께 강의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학교 배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형 선박과는 달리 사이즈가 엄청나게 작다. 작은 배의 최대 단점은 바로 흔들림이 심하다는 것이다. 배가 요동치기 시작하면 수업 광경이 상당히 재미있어진다. 단체로 바이킹을 탄 듯 오른쪽 옆자리 친구가 아래로 내려가고 왼쪽 옆자리 친구는 위로 올라간다. 반대로도 마찬가지다. 그 상태로 수업이 계속된다. 신기한 건 교수님은 파도의 영향을 전혀 안 받는 사람처럼 꼿꼿이 균형을 잘 잡고 서 계시다는 것이다.     



수업의 클라이맥스는 뱃멀미였다. 멀미를 거의 하지 않는 소현도 생각보다 흔들림이 심한 학교 배 안에서는 속이 거북해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동기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좋지 않았다. 거의 울기 직전인 친구도 여럿 보였다. 파도가 심하던 어느 날, 친구들은 결국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서 교실 밖으로 사라졌다. 토하러 간 것이었다. 많은 인원이 토하러 나가자 수업이 잠시 중단됐다. 소현은 교실에 몇 안 남은 사람들 중 하나였다. 소현도 조금만 더 있으면 토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찡그린 얼굴로 교수님을 보다가 또 놀랐다. 이번에도 교수님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마치 홀로 딴 세상에 있는 사람 마냥 커피잔을 들고 느긋하게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교수님은 소현과 눈이 마주치자 별일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말했다.   


  

“일주일 정도 토하면 다 적응한다.”     



그러면서 뱃멀미는 뱃멀미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트램펄린 뛰다가 땅을 밟으면 울렁이는 것처럼 많이 흔들리는 배를 타다가 육지에 내리면 또다시 멀미를 한다는 것이다. 뱃멀미만으로도 괴로운데 이걸 지나면 다시 육지 멀미가 기다리고 있다니 청천벽력이었다. 교수님은 망연자실한 소현의 얼굴을 보며 재미있다는 듯 껄껄 웃었다.     



여유로운 교수님이 새삼 위대해 보였다. 소현은 친구들이 토하고 올 동안 속도 달랠 겸 강의실 창밖에 펼쳐진 바다로 눈을 돌렸다. 육지 근처라서 바다뿐 아니라 섬들도 함께 보였다. 유난히 아름다운 그 풍경을 보자 불편한 속이 한결 나아지는 것 같았다. 강의실 바로 앞 화장실에서는 으웩으웩, 친구들이 토하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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