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이야기
성산항으로 돌아가는 배가 우도항에 도착했다. 부우----- 뱃고동이 울렸다. 버스는 야트막한 돌담이 정겨운 골목길을 돌아 우리를 우도항에 내려놓았다. 좁은 항구는 배에 타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었다. 딱 봐도 중간 크기 배 한 대로는 수용할 수 없는 숫자였다. 아까 우도에 내릴 땐 한적했는데 그 사이에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진 거지? 의아하던 찰나 배에 달린 스피커에서 선장의 목소리가 나를 재촉했다.
뭐라고? 이게 무슨 말이지? 미처 그 말뜻을 헤아릴 틈도 없이 뒤에서 사람들이 밀어닥쳤다. 우리는 피난민 행렬 같은 인파에 휩쓸려 배 안으로 밀려 올라갔다.
여기저기서 다급히 일행을 확인하는 소리가 들렸다. 6.25 전쟁통이 이랬을까. 관광차 들른 우도는 순식간에 떠나지 않으면 안되는 곳으로 돌변했다. 급히 승선한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같이 탄 언니가 보이지 않았다. 까치발을 하고 저 멀리 내려다 보았다. 막 배에 오르는 언니의 정수리가 보이자 안심이 됐다. 그런데 언니는 타다 말고 갑자기 돌아섰다. 나는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렀다.
그러더니 내 말은 듣지도 않고 배에서 미련 없이 내려버렸다. 내 눈엔 '미련 없이' 내린 것처럼 보였다. 5분, 10분이 지나도 언니는 오지 않았다. 부우------- 뱃고동이 울렸다. 사람들도 얼추 다 탄 것 같았다. 배는 콩나물 시루로 변했다. 너무 불안한 마음에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벨이 울리자마자 바로 받았다.
언니는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3년 전 돌아가셨다. 가방 가지러 간다고 나가 놓고 빨리 뛰어와도 모자랄 판에 지금 돌아가신 할머니 타령에 바다 구경이라도 나갔단 말이야?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미는데 다시 뱃고동 소리가 울렸다. 언니가 이 배를 놓칠까 봐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곧이어 출발을 알리는 선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급한 나와는 달리 언니는 아주 느긋하고, 심지어 행복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전화는 그대로 끊겼다. 미친 듯이 다시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배가 서서히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 꼭 낀 채 한 발자국도 움질일 수 없었다. 새카맣게 모인 머리들 꼭대기로 창문의 끄트머리만 보였다. 나는 간신히 한 팔을 위로 올려 창문 쪽으로 있는 힘껏 손을 뻗었다. 아무리 애써도 잡히지 않는 그 창문 너머로, 언니가 남겨진 우도가 아스라히 멀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