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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창가 Aug 13. 2021

돈을 모을 수밖에 없는 직업




국내 연봉 TOP 10은 어떤 직업일까.     



주기적으로 시행하는 이 조사에 늘 포함되는 직업이 있다. 바로 도선사다. 도선사는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인 선장 중에서 시험을 통과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직업으로 간단히 말하면 입항할 때 배를 운전해주는 일을 한다. 고소득 전문직으로 매번 거론되는 관계로 생소한 직업인데도 많은 사람에게 익숙하다.     



이 도선사는 소현이 속한 해기사라는 직종 중 하나다. 해기사는 고소득 전문직이다. 물론 돈을 많이 받으려면 반드시 배를 타야 한다. 육상직은 그만큼 받지 못한다. 소현이 배를 타기로 선택한 여러 가지 이유 중에서 고소득인 점도 빼놓을 수 없었다. 고소득이라니 수입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선종과 회사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웬만한 외항상선은 비슷한 수준이지만 그중 소현이 타는 LNG 선이 월급이 높은 편이고 근무환경이 좋아서 경쟁률이 높은 선종이다. 요즘은 추세가 바뀐 것 같지만 소현이 취업할 때까지만 해도 LNG선은 ‘공부 잘하는 애들이 타는 배’라는 인식이 있었다. 정확한 금액은 밝히기 어렵지만 어디 가서 얼마 받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정도는 된다.      



시작하는 연봉이 높은 편인데 진급도 일반 회사보다 빠르다. 진급 간 텀은 약 2년 정도로 짧고, 월급차도 크다. 사원에서 대리, 대리에서 과장으로 2년 만에 올라가면서 수입은 확 늘어난다고 보면 된다. 육상직과 가장 큰 차이점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급여 차이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정규직은 휴가 중에도 월급이 나오지만 비정규직은 월급이 안 나오는 대신 휴가 중에 실업 급여가 나온다. 또 신기하게도 비정규직 월급이 정규직보다 높기 때문에 이것저것 따지면 총급여는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복지면에서도 비슷한 대우를 받는다.     



하지만 절대적인 금액이 그런 거지 면면을 들여다보면 고달프다. 사실 배를 타면 집에 못 가고 회사에서 먹고 자는 것이기 때문에 24시간 대기조나 다름없다. 근무 시간이 아니라도 비상상황이 생기면 언제든 뛰어나가야 한다. 주말이나 밤, 새벽 시간도 예외는 없다. 24시간 근무로 치면 사실 최저임금도 못 받는다고 선원들끼리 자조 섞인 농담을 하기도 한다. 주말도 없이 일할 때는 하는 일에 비해 월급이 적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래도 이 직업이 고소득으로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나가는 돈이 없기 때문이다. 일단 생활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의식주가 배 위에서는 공짜로 해결된다. 사관들에겐 화장실 딸린 넓은 방이 하나씩 제공되고, 하루 세 끼 식사가 나오고, 옷은 회사 제복을 입는다. 태평양 한가운데에 있으니 주말에 쇼핑이나 외식을 하러 나갈 수도 없다. 소현 또래의 20대 여성이 주로 쇼핑하는 옷이나 화장품도 배 안에선 무용지물이다. 옷은 제복과 운동복으로 해결되고, 화장은 더운 기관실에서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일하기 때문에 하고 싶어도 못 한다. 게다가 인터넷이 불안정해서 핸드폰 붙잡고 있다가 충동구매의 유혹에 빠질 위험이 적고, 어차피 결제해도 망망대해에서 택배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인터넷 쇼핑도 안 하게 된다. 회사와 집이 같은 장소에 있어서 일반 직장인이 출퇴근에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교통비도 들지 않고, 카페가 없어서 점심시간에 사 먹는 커피값도 쓸 일이 없다.



한 마디로 돈을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는 구조다.     



원래 직장인이란 직급이 올라갈수록 후배들에게 밥을 사줘야 하는 경우도 많고 각종 경조사비도 만만치 않은데, 해기사는 회식도 배에서 나오는 음식으로 하고 경조사는 참석하고 싶어도 못하는 걸 주변에서 다 알기 때문에 매우 편안한 마음으로 빠질 수 있다. 여기서 절약되는 돈 역시 쏠쏠하다. 이런 식이니 입금만 있고 지출은 없는 셈이다. 돈이 강제로 통장에 차곡차곡 쌓인다. 육지에서는 지출을 통제하기 위해 카드를 자르고 돈 안 쓰기 모임에 가입하고 가계부를 써서 전문가에게 검사받고 온갖 난리를 피워도 쉽지 않다고 들었다. 소현은 아예 지갑이 없다. 지출이 없으니 가계부 쓸 일도 없다.      



어떤 일을 하려면 인간의 의지를 믿지 말고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라는 말이 있다. 육지에서는 돈을 쓸 수 없는 상황을 억지로 만들기 위해 노력들을 하지만 배는 아예 돈을 쓸 수 없는 환경으로 세팅이 돼 있기 때문에 거기에 들일 정성은 번 셈이다. 한창 돈 쓰고 싶은 나이에 오히려 저축하는 습관을 들인 것도 배를 타서 얻은 큰 수확이다. 여기에 덤으로 묵직한 통장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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