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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창가 Aug 18. 2021

여름은 늙어 버렸다



절기란 참 신기하다. 그렇게 기승을 부리던 무더위가 입추가 지나자마자 싹 물러가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하다 못해 새벽엔 추워졌으니 말이다. 이제는 낮에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견딜만하고 요리하느라 불 앞에 서 있어도 땀이 흐르지 않는다.



우리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엄마가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는 강렬한 태양과 땀이 줄줄 흐르는 더위가 아니었다. 바로 여름이 물러가는 이 순간 때문이다. 엄마는 찌는 듯한 무더위가 마침내 물러가는 것이 느껴지는 순간이 1년 중 가장 슬프다고 하셨다. 학창 시절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이번 여름에 비로소 엄마의 말을 이해하게 됐다.



내가 지금 무척 슬프기 때문이다.






눈부신 바다





새벽 3시에도 잠들지 않는 청춘이 불타오르던 해변






하늘과 바람과 바다와 모래






한여름밤의 냄새와 풀벌레 소리



출처: 연합뉴스



더위와 코로나를 견딜 수 있게 해 준 일등공신 태극전사들




이 모든 것은 이제 여름과 함께 내 곁에서 떠나가고 오직 기억 속에만 흔적을 남겼다. 아무리 잘 찍은 사진도 그 순간을 그대로 간직하진 못한다. 여름은 매년 다시 찾아오지만 2021년 여름은 오직 한 번뿐이고, 나는 그 단 한 번의 기회를 써버린 채 이렇게 슬퍼하고 있다. 인생이 늘 그렇듯이 지나간 것을 되돌릴 순 없기에.



제발 물러가길 바랐던 더위가 사라지니 슬퍼진 것은 나만의 감정일까, 누구나 그런 걸까. 시원하게 내리는 빗소리와 함께 유난히 뜨거웠던 2021년 여름을 이제는 진짜로 보낸다. 여름은 늙어 버렸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계절 가을이 오고 있다.



<여름은 늙어 버렸고> - 헤르만 헤세 -

여름은 늙고 지쳤다

무지막지한 두 손을 늘어뜨린 채

텅 빈 눈으로 경작지를 바라본다

이젠 끝난 것이다

여름은 자신의 불꽃을 흩뿌렸다

자신의 꽃들을 모두 태워버렸다

모든 게 그와 같다

결국 우리는 지친 채 뒤돌아보고

오들오들 떨며 빈손에 입김을 분다

일찍이 행운이 있었는지

업적이 있었는지 의심한다

우리의 삶은 아득한 과거 속에 있다

우리가 읽었던 동화처럼 빛이 바랜 채

여름은 일찍이 봄을 때려죽이고

자신이 더 젊고 더 힘세다고 생각했다

이제 여름은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 내어 웃는다

요즘 들어 여름은

완전히 다른 쾌락을 계획 중이다

더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모든 것을 체념한 채

바닥에 쓰러져 창백한 두 손을

차디찬 죽음에 맡기고

더는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않고

스르르 잠이 든다...

죽는다...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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