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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창가 Aug 23. 2021

조울증 도깨비와 툭 하면 우는 캔디

쓸쓸하고 찬란하神 도깨비



드디어 정주행을 마쳤다, 그 유명한 드라마 <도깨비>. 입 달린 사람은 전부 극찬해 마지 않고, 어떤 아기 엄마는 쉬 싼 아기 기저귀를 갈아주다가 넋을 잃고 보는 바람에 아기가 울며 보채다 그 다음 쉬를 싸서 자기 치마를 적실 때까지 정신줄을 놓고 있었다는 놀라운 흡입력의 작품.



절대 진도가 안 나가는, 그러나 죽기 전에는 꼭 읽어야 한대서 억지로 펴든, 그래서 맨 앞 부분만 새카맣게 때가 탄 고전 벽돌책마냥, 드라마 <도깨비>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하도 유명하다고 해서 보긴 봤는데 이상하게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억지로 4회까지 봤는데 그 이상 보지 못했다. 그래서 얼마 후 또 시도하고, 얼마 후 또 시도하고. 그래도 4회 이상은 보지 못했었다.



그래서 그냥 보지 말아야겠다 생각했던 <도깨비>를 다시 보게 된 건 넷플릭스 정기 구독을 신청한 뒤였다. 아이에게 보여줄 양질의 영상을 찾으려고 구독 신청을 했는데 생각보다 볼 게 없어서 방치되던 넷플릭스를 나라도 활용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뒤지다 보니 추천 한국 드라마 목록에서 <도깨비>가 눈에 띄었다.



이거라도 봐서 구독료 본전을 뽑아야겠다.



이번엔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보리라 마음 먹은 나는 작심하고 1회를 틀었다. 4회까지는 여러 번 봐서 내용이 익숙했다. 역시나 이번에도 4회까지 가는 동안 무수한 갈등에 휩싸였다. 그냥 보지 말까, 이걸 꼭 봐야 하나. 당시 보면서 느꼈던 감정이 그대로 올라왔다.






내가 <도깨비>를 끝까지 보지 못했던 건 공유 캐릭터에 감정이입이 되지 않아서였다. 전쟁터를 휩쓸며 혁혁한 공을 세우고 돌아왔는데도 역적으로 몰려 칼을 맞고 억울하게 죽은 고려 상장군 김신. 통렬한 한이 서린 그는 부제에 붙은 '쓸쓸하고 찬란한' 도깨비로 환생하는 듯했다.



그런데 도깨비 신부라는 지은탁을 만난 이후 김신은 종잡을 수 없는 다중인격이 됐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 전까지는 얼마나 쓸쓸하게 살았는지 모르겠지만 대체 진지하자는 건지 웃기자는 건지 헷갈렸다. 불을 입으로 불어서 끄면 느닷없이 지은탁 앞으로 소환되는 김신은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갑자기 외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다. 늘 책을 가까이 하고, 미술과 음악에 조예가 깊고, 지적인 외모와 분위기를 풍기고 싶어하는, 깨방정 캐릭터로 돌변한다.



같은 지붕 아래 동거하게 된 저승사자에게 자기가 멋있는지 봐 달라고 하고, 맘에 안 든다고 서로의 음식에 고춧가루, 아니 후춧가루를 뿌리며 못 먹게 방해하고, 자기더러 하나도 멋있지 않다는 지은탁의 말에 그런 말 정말 처음 듣는다고 진심으로 기분 나빠하고, 아이돌을 보고 저 소녀가 원수의 환생이라면 바로 용서하겠다는 둥 철없는 조카보다 더 철이 없는 생각을 하며 쓸쓸함과는 1도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일삼는다. 그러다가 지킬 앤 하이드처럼 다시 느닷없이 우울해져서는 비를 뿌리고 사극톤으로 멋진 말들을 쏟아낸다.



드디어 자신의 검을 뽑아줄 도깨비 신부를 찾았다 확신한 순간 그가 보인 태도는 참 실망스러웠다. 더 살고 싶은데, 나 이대로 가는 거야? 죽기 싫은 것 같기도 하고... 라면서 갑자기 홈쇼핑에서 물건을 주문해대고, 배꼽을 내보이며 몸매를 자랑한다. 타이틀에서 기대했던 것과는 완전히 상반된 모습이다. 그때만큼은 가장 쓸쓸하고 애잔해질 줄 알았건만. 천 년만에 마침내 죽음을 앞두고 복잡한 심경이 될 수는 있겠지만 너무 오버스럽다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드라마 소개글에서 도깨비 캐릭터가 '변덕스럽다'라는 말을 보았다. 천 년이나 가슴에 칼을 꽂고 불멸의 삶을 살아온 도깨비라도 충분히 변덕스러울 수는 있다. 그러나 그 간극이 너무 크고 갑작스러워서 아쉬움이 남았다. 그리고 이건 변덕이라기보다는 그냥 무척 이상해 보였다.



시나리오 쓰는 법 강의를 잠시 들은 적이 있는데 작가는 인물의 성격을 확실하게 잡아야 한다고 배웠다. 이도 저도 아닌 캐릭터는 독자의 시선을 잡아끌 수 없다고. 아마 이 인물을 그대로 숙제로 제출했다면 도대체 이 캐릭터의 성격은 뭐냐고 엄청나게 지적질을 당한 채 다시 써오라고 반려됐을 것이다. 차라리 드라마 <킬미, 힐미>의 지성처럼 일곱 개의 성격을 가진 다중인격 장애를 주인공의 성격으로 설정했다면 이런 불편함이 없었을 텐데. 도대체 김신은 어떤 성격의 도깨비인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도깨비 신부를 자처한 지은탁은 그보다는 일관된 성격의 소유자로 보였다. 그런데 그녀에게도 문제는 있었다. 아홉 살 어린 나이에 조실부모하고 사고무탁하여 못된 계모보다 더한 이모와 남매의 온갖 구박을 받으며 산 지 어언 10년. 온갖 불행 소스를 다 때려넣은 잡탕 같은 삶에서 외로워도 슬퍼도 절대 울지 않는 캔디 같던 그녀가 도깨비를 만난 뒤 툭 하면 눈물을 보인다. 갑자기 서운해하고, 갑자기 감동받고, 갑자기 삐치고, 갑자기 보고 싶어 하고, 갑자기 화를 낸다. 그래도 도깨비처럼 간극이 크진 않아서 이해가 가는 면도 많다.



여기까지 쓰다 보니 혹시 둘은 서로의 성격마저 변화시키는 천생연분인가 싶기도 하다. 여하튼 나는 이런 이유들로 지금까지 4회를 넘어가지 못했었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불굴의 의지로 4회까지 다시 본 뒤 5회로 넘어갔다. 공유가 시종일관 진지했더라면 어땠을까, 쓸쓸한 가운데 아주 가끔만 변덕을 보여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미련을 가득 품은 채 나는 <도깨비>의 초반부를 간신히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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