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완연한 봄이다. 지구 온난화 때문인지 올봄엔 꽃샘 추위도 없이 이대로 따듯해지려나 보다. 낮 기온이 20도 안팎까지 오르면서 옷차림이 순식간에 얇아졌다. 하지만 나는 계절의 변화를 이런 것들보다는 일몰 시간으로 느낀다. 겨울엔 저녁 5시만 넘어도 깜깜해진다. 그러면 아, 겨울이구나 하고 피부로 느낀다. 그러다가 2월 말쯤 되면 해 지는 시간이 점점 늦어진다. 6시가 돼도 어둑어둑한 정도였다가 3월이 되면 저녁 먹는 시간이 돼도 밝은 편이다. 해가 언제 지든 나는 꼭 따로 시간을 내서 부엌 옆 조그만 창문으로 노을을 바라본다. 내게는 어떤 의식 같은 시간이다. 지평선 너머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태양을 보고 있노라면 까닭없이 눈물이 나온다. 오늘 하루가 또 이렇게 지났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살이의 덧없음, 흘러가는 시간, 하루에 대한 후회와 반성.... 이런 것들이 붉은 노을과 함께 내 가슴을 진하게 물들인다. 생텍쥐페리도 석양을 보면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린 왕자의 말 속에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