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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에게 봄날을 돌려주마

by 새벽창가
몸짱아줌마4.jpg 몸짱아줌마 정다연 씨



2000년대 초반, 아줌마계와 다이어트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사람이 있었다. 일명 '몸짱아줌마'로 알려진 30대 주부 정다연 씨였다. 두 아이 엄마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게 탄탄하고 날씬한 몸매의 소유자였다. 대중은 즉시 그녀에게 열광했다. 그녀는 연예인 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리며 일본과 중국, 홍콩까지 진출했고 소위 말해 대박을 쳤다. 한류스타의 원조격인 셈이었다.





그때 나는 밤 12시에 라면에 밥 말아먹고 자도 전혀 살이 안 찌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별 관심은 없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살 찌는 것과 나는 아무 상관 없을 줄 알았다. 다이어트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던 '겁 없이 날씬한' 옛날이었다.





아이를 낳고 내가 물만 먹어도 살 찌는 체질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됐다. 그 전엔 물 아니라 콜라를 양동이로 들이켜도 전혀 살이 찌지 않았는데 출산은 체질도 바뀌게 하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출산과 육아를 겪으면서 나빴던 피부가 좋아지고 생리통이 사라지고 심지어 키가 좀 컸다는(!) 사람도 봤는데 나는 전반적으로 안 좋은 쪽으로 변했다. 그 중 가장 큰 변화는 살이 쉽게 찌는 체질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나는 이전보다 약 10kg 정도 찐 상태로 살고 있다. 이제는 이 몸이 더 익숙하다. 몸도 과거를 잊은 것 같다. 넌 원래 날씬하지 않았잖아 라고 말하듯 절대 예전 몸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인생이 뭐 그런 거지 하는 심정으로 그럭저럭 지내왔다. 그런데 지난 주말 아이 옷 사러 쇼핑을 나갔다가 현타가 왔다.





오랫만에 나간 김에 내 옷도 같이 보게 됐다. 화사한 빛깔 옷을 집어들고 피팅룸으로 들어갔다. 옷을 입고 나서 그만 울고 싶어졌다. 일부러 큼지막한 사이즈로 집어 왔는데도 꽉 껴서 남의 옷을 입은 것 같았다. 벽면 하나를 통으로 차지한 전신 거울 속 내 모습이 혐오스러웠다.





그때 갑자기 이 말이 떠올랐다.





니들에게 봄날을 돌려주마.





몸짱아줌마 정다연 씨는 한 인터넷 매체에 자신의 다이어트 성공기를 칼럼 형식으로 게재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니들에게 봄날을 돌려주마>는 바로 그 칼럼 제목이었다. 읽은 적은 없는데 내 기억 속 어딘가 저장돼 있었나 보다. 갑자기 툭 튀어나왔다. 마치 미래에 내가 살 찔 걸 예상이라도 했던 것처럼. 단 11글자 속에 넘치는 자신감과 봄날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다. 스스로에게 얼마나 자신이 있어야 불특정 다수를 향해서 저렇게 확신에 찬 반말을 날릴 수 있을까.





그녀는 두 아이를 낳고 키 162cm에 몸무게가 78kg까지 육박할 정도로 뚱뚱했었다고 한다. 게다가 고질적인 허리 통증까지 그녀를 괴롭혔다. 의사의 권유로 시작한 운동이 그녀 인생을 봄날로 만들었다. 나는 아줌마가 되고서야 몸짱 아줌마의 정신무장을 이해하게 됐다. 봄날을 향한 간절함 그리고 절박함. 그녀가 만든 휘트니스 이름도 '봄날 휘트니스'다.





자기관리의 끝판왕은 '몸 관리'라는 말이 있다. 운동을 시작한 사람은 많지만 운동으로 '끝장을 본' 사람은 소수다. 그만큼 운동, 특히 다이어트 목적의 운동은 지속하기가 어렵다. 이 글을 쓰면서 궁금해서 몸짱 아줌마를 검색해 보았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유튜브를 통해 활발하게 활동 중이었다. 영상 속 그녀는 50대 중반을 넘어선 나이에도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탄탄한 몸매와 꺾이지 않는 젊음을 자랑하고 있었다. 어렵게 찾은 봄날을 오래도록 지키려는 부단한 노력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리스펙트!





그녀를 보면서 인생의 봄날은 남이 선사해주는 게 아니란 걸 배웠다. 내 자신이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이어트 계획표를 작성했다. 내년 봄엔 지금의 나 같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니들에게 나의 봄날을 보여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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