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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엄마가 싸 준 도시락 먹어줘서 고마웠다

by 새벽창가


나는 학창시절 내내 도시락을 싸 갖고 다녔다. 내가 학교 다니던 때만 해도 급식이 없었기 때문에 고등학교 3학년 졸업하는 날까지 꼬박꼬박 엄마의 도시락을 먹었다. 요즘은 초등학교, 심지어 유치원도 급식을 한다. 옛날 엄마들에 비하면 요즘 엄마들이 정말 편안하게 살고 있는 건 맞는 것 같다.



고교 시절엔 야간자율학습이 있어서 도시락을 두 개씩 들고 다녔다. 엄마는 언니 것까지 총 4개의 도시락을 싸기 위해 매일 식구들이 잠든 캄캄한 새벽에 일어나셨다. 엄마가 그 시간에 해야 할 일은 도시락 싸는 것뿐이 아니었다. 나가는 시간이 제각각인 가족의 아침 식사를 일일히 챙겨야 했다. 주말 빼고 매일 도시락 4개, 아침식사 4번을 차린 것이다. 아마 지금 그러라면 엄마의 자존감이니 뭐니 하면서 맘카페와 학교 앞 커피숍이 분노한 엄마들로 들끓을 거다.



나 역시 그렇게 할 자신은 없다. 유치원에서 급식 먹고 오는 아이 하나 챙기는 것도 아침마다 허덕인다. 매번 계란과 김으로 아침상을 차려 주면서 '엄마가 내일은 꼭 맛난 반찬 해줄게'하고 공수표를 남발한다. 아이의 초라한 밥상을 보고 있으면 그 시절 학교 가기 전 엄마가 차려주던 진수성찬이 떠오른다. 고기 좋아하는 날 위해 그 새벽에 달달한 양념갈비를 굽고 싱싱한 쌈채소를 매일 준비해주셨다.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다. 잠이 덜 깬 내가 밥이 뜨겁다고 밥상에 앉자마자 공연히 짜증을 부렸다. 정신 없이 도시락을 싸고 있던 엄마가 얼른 뛰어와 밥 공기 전체를 정성껏 숟가락을 뒤집으면서 후후 불어주셨다. 한 번 뒤집을 때마다 '얼른 식어라'하면서, 어린애도 아닌 열 아홉 살이나 먹은 딸의 밥을...... 산소가 부족할 정도로 입김을 불어대던 엄마의 얼굴과 식탁 전등 위로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밥의 훈김이 아직도 기억난다. 신경질 부린 게 미안했는데 엄마한테 사과하지 못하고 그냥 나왔었다.



그런데 그날이 마지막으로 도시락을 먹는 날이었다. 대입이 마무리되고 오전 수업만 남은 애매했던 시기. 식사시간이 되자 나는 평소처럼 아무 생각 없이 도시락을 열었다. 그런데 익숙한 도시락통 속에 못 보던 것이 들어 있었다. 곱게 접은 종이였다. 뭔가 싶어서 열어보니 엄마의 낯익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 글씨체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 같아서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종이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우리 막내딸, 그동안 공부하느라 고생했어. 오늘이 마지막 도시락이네. 지금까지 엄마가 싸준 도시락 먹어줘서 고마웠다."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가슴 밑바닥에서 정체 모를 뜨거운 감정이 한뭉텅이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편지를 고이 접어 책가방 깊숙이 집어넣었다. 짝꿍이 뭐냐고 물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먹기만 했다. 마지막 도시락은 엄마가 싸준 도시락 중 가장 맛있었다.



그날 집에 돌아온 뒤에도,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나는 단 한번도 엄마와 그 편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편지 잘 봤다고 한 마디 했을 법도 한데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기한 건 엄마도 묻지 않았다. 엄마의 도시락 편지는 그렇게 세월 속에 묻혔다.



엄마가 되고 나니 그날 아침 엄마의 마음이 비로소 그려진다. 내가 막내이기 때문에 나의 마지막 도시락이 곧 엄마 인생의 마지막 도시락이었다. 10년 넘게 아침마다 두 아이 도시락을 챙겨온 엄마는 아마도 그 도시락을 싸면서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아이가 먹다 흘리고 간 밥풀만 봐도 찡할 때가 있는데 엄마 심정은 오죽했을까. 하필 그 날 아침에 짜증내는 바람에 엄마의 서프라이즈가 빛이 바란 것 같아 후회가 물밀 듯 밀려왔다.



엄마의 소중한 도시락 편지는 어디 갔는지 영영 없어졌다. 원래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내가 그건 또 왜 버린 건지. 아니면 너무 꽁꽁 숨겨놔서 못 찾는 건지도 모르겠다. 불고기와 김치 냄새가 가득 배어 있던 엄마의 편지 속 또박또박한 글씨는 내 마음 속에만 남아 있다. 그 편지, 엄마는 기억하고 있을까. 지금이라도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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