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구 <포구기행>
학창 시절 같은 반에 아빠가 시인인 친구가 있었다. 문학소녀였던 나는 굉장히 낭만적인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렇게 말했다. '난 우리 아빠가 무슨 돈으로 내 학원비 대는지 모르겠어.' 그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순진했다) 나이가 이만큼 먹고 이 글을 읽고서야 그 말이 다시 가슴에 와 닿는다. 시를 읽지 않는 세상에서 시를 써서 생활을 한다는 건 모르는 내가 봐도 꿈같은 일일 거다. 아마 곽재구 시인도 삶의 어느 지점에선가 현실과 타협했던 것 같다. 그 결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짧은 문장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삶을 위해 삶의 가장 소중한 빛을 지워버린 시인. 그래도 시인의 마음속엔 미처 내뱉지 못한 시가 한가득 넘쳐흐를 거라 생각한다. 언젠가 그 시들이 바깥으로 흘러넘쳐 세상 가득 출렁일 날을 기대해본다. 모두가 시를 읽는 세상을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