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창가 Apr 10. 2021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이형기 <낙화>



낙화

- 이형기 -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맑고 화창한 오늘, 동네를 산책했다. 수요일까지만 해도 아름다웠던 벚꽃이 오늘 보니 거의 떨어지고 없었다. 새하얀 꽃잎이 뒤덮었던 나뭇가지는 짙은 분홍빛으로 변해 어제와 같은 나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바닥에 수북이 쌓인 벚꽃잎은 사람들의 발에 밟혀 본래의 아름다움을 잃은 채 시들어 있었다. 꽃은 필연적으로 지기 위해 핀다. 꽃이 져야 그 자리에 열매를 맺기 때문이란다. 꽃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그래서 낙화 직전이라고들 한다. 가야 할 때를 알고 가는 꽃, 박수칠 때 떠나는 꽃, 무성한 녹음과 열매를 위해여 꽃답게 죽는 꽃...... 이형기 시인의 <낙화>를 읽으니 나무에 핀 꽃보다 바닥에 떨어진 꽃이 더 아름다워 보인다.










작가의 이전글 요즘 나는 시를 쓰지 못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