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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창가 Apr 10. 2021

무성한 슬픔의 숲에서 빠져나오는 법

셰릴 스트레이드 <와일드>



나는 무성한 슬픔의 숲에서 나를 잃어버린 후에야 숲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찾아냈다. (After I lost myself in the wilderness of my grief, I found my way out of the woods)  - 셰릴 스트레이드 <와일드> -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슬픔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견딜 수 없어서 무작정 배낭을 짊어지고 길을 나선 한 여자. 그 길은 무려 4300km에 달하는 미국의 악명 높은 PCT(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이다. 짐을 아무리 줄여도 배낭은 매고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할 만큼 무거웠다. 그걸 짊어진 채 그녀는 그냥 걷고 걷고 또 걸었다. 발톱이 빠져도 걷고, 들짐승이 나타나도 걷고, 고통이 찾아와도 걷고, 물이 없어서 사경을 헤매면서도 걸었다. 마침내 94일 만에 그 길을 완주한 그녀는 지독한 슬픔의 늪에서 스스로를 건져냈다. 다른 건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그저 죽기 직전까지 걸었을 뿐. 몇 년 전 지리산을 찾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TV에서 봤던, 걷기 말고는 달리 할 게 없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도 떠올랐다. 걷는 길은 다르지만 나도 그들도 걷기를 마친 하루의 끝자락에선 마음으로 울었다. 그런 하루가 쌓이고 쌓여서 어느 날 문득 치유에 도달한다고 한다. 여기서 '한다'라는 방관자적 어미를 사용한 건, 슬프게도 나는 아직 그 기분을 맛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육체를 극한으로 몰아서 무성한 슬픔의 숲에서 빠져나올 수만 있다면 뭐든 못하랴. 하지만 아직까지 내가 그녀처럼 PCT 같은 극한 코스를 찾지 않는 건, 그래도 살 만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괴롭다고 발버둥 치지만 정말로 견딜 수 없었다면 맨발로 가시밭길이라도 걸었어야 했다. 내 슬픔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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