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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창가 Apr 23. 2021

봄날'이' 가는 게 아니라 봄날'은' 간다


계절이 돌고 돌아 다시 봄이다. 몇 번째 맞이하는 봄인지 따져보다 보니 앞으로 남은 봄은 또 몇 번일지 아득해진다. 수십 번일 수도 있고,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일 수도 있고, 이번 봄이 마지막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앞날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할 테니.


그런 의미에서 나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봄이 가고 있다. 아직 4월인데도 엊그제는 낮 기온이 28도를 넘나들었다. 이대로 여름이 오나 싶어 주위를 물들인 꽃잎들이 애달프다. 질척이지 않고 어떻게 이 봄을 멋지게 보내줄까 생각하다가 노래 한 곡이 떠올랐다.


우리 할머니가 즐겨 부르시던 '봄날은 간다'이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로 시작하는 유명한 이 곡은 할머니의 입을 거쳐 부모님이 흥얼거리는 소리로 배웠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 꽃이 지면 같이 울던 / 알뜰한 그 맹세에 / 봄날은 간다"


가사 전체의 내용은 6.25 전쟁 중에 남자를 잃은 여자의 안타까운 사연을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여자에게 봄날을 선사했던 남자와 함께 그녀의 봄날도 사라져 버렸다. 1953년에 발표된 곡이니 부모님이 지금 내 아이보다도 어릴 때 나온 노래다. 그 시절을 알지도 못하고 전쟁을 겪어본 적도 없는 내게 가삿말이 거짓말처럼 세월을 건너뛰어 찾아왔다.


'봄날은 간다'의 미학은 '봄날이 간다'가 아닌 것에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정말 무릎을 탁 칠 정도로 공감했다. '은'과 '이'로 조사 한 글자만 다를 뿐인데 느낌이 완전히 바뀐다. 유독 봄은, 봄날'이' 가는 게 아니라 봄날'은' 가는 것이었다. 봄날'이' 가면 그냥 지나가고 내년에 또 올 듯한 느낌인데, 봄날'은' 가면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이 가사가 그렇게 가슴이 아렸나 보다.


'은'과 '이' 사이에서 붙잡을 수 없는 나의 봄날을 생각했다. 지금 내가 만들어가는 봄날은 봄이 아닌 것을 봄처럼 보이게 만들려는 애씀이다. 정작 한창땐 봄인 줄 몰랐던 나의 봄날이 새삼 서럽다. 그래서 오히려 미련 없이 보내주려 한다. 지난 봄날이 아름다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놓아주는 것임을 이제는 알기에. 너무 애쓰지 말자. 속절없이, 봄날은 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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