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FP의 기획법

계획적인 P와 감각적인 J 사이를 꿈꾸며

by 채널나인

MBTI를 다 믿는 건 아니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아이스 브레이킹을 할 땐 또 이것만한게 없다.

‘I에요 E에요? 아 저는 P여서 반복되는 일들이 싫어요...’

서로 다른 성격 유형의 이야기들로 떠들다 보면 어느새 친근감이 생긴다. 때로는 같은 유형의 동질감을 느끼기도 하고 아~ 그 사람은 그래서 그런거였구나 하며 뒷담화를 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맞는 건 아니겠으나 잘되면 내 탓, 안되면 애꿎은 MBTI 탓을 하며 죄를 뒤집어 씌울 수 있으니 고맙긴 하다.


나는 I 같은 ENFP다. 한때는 I 와 E가 거의 같은 점수로 나왔는데 요즘은 E가 조금 더 높게 나온다. 일명 ‘스파크형’. 친절하고 이해심이 많은 기질을 가지고 있으며, 계획보다는 즉흥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편이고, 위기 대처 능력이 뛰어나다고 한다. 직관력이 뛰어나고 틀에 얽매이지 않고 적응력이 높은 성격이다. 기획자로서는 계획대로 일을 추진하고 진행해야 하는데 마감에 쫓겨 닥쳐야 효율이 높아지니 그런 점만 빼고서는 상당히 괜찮은 유형 같다.


현장 일이야 워낙 변수가 많아서 원래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고 돌발상황이 발생하는데 그런 면에서 별반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즉흥적으로 대처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시도를 좋아하고 말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많이 듣는 편이어서 그런 대화들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경우가 많다.


ENFP는 사람과 새로운 일, 열정을 쏟을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면 폭발적인 결과를 만들어 낸다고 한다. 나 역시도 이런 조건이 되었을 때 좋은 결과물을 낸 적이 있다. 내가 ENFP의 정석은 아니겠지만 내가 기획하는 방법들이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선 기획을 하기 전에 자료조사를 하는데 이게 또 하다보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맨 처음 의도와 완전히 다른 걸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아 맞다, 나 이거 하고 있었지 하고 다시 돌아온다. 마감시간은 정해져 있으나 역시 기획은 코앞에 닥쳐야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나오는 법! 만만디로 느긋하게 즐기다가 시간에 쫓겨 부랴부랴 하는 경우가 많다. (본부장님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결과물이 나쁘지도 않다. 조금만 손보고 디벨롭하면 되니까. 나 좀 천잰 듯 하하하!


두 번째로 기획을 할 때 먼저 결과물을 생각한다. 이 행사나 캠페인을 통해 최종적으로 어떤 결과물이 나올 것인지를 머릿속에서 그려본다. 화려한 감동의 피날레일지 행사장에서의 압도적인 공간감을 줄 것인지, 책자나 포스터 등 제작물의 형태가 될지 그려보면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보인다.


세 번째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인데, 바로 명칭이다. 글로벌 시대이고 해외에 있는 아이들도 알아볼 수 있도록 영어로 된 제목을 자주 쓰기는 하지만 사실 나는 한글로 된 행사명을 더 좋아한다. 결연 아동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축구대회인 ‘HOPE CUP’이나 CCM 경연대회인 ‘I am a Song’ 같은 경우는 행사의 특성상 어쩔 수 없이 타이틀을 영어로 쓸 수밖에 없었지만, 그 외에는 가능하면 한글로 된 행사명을 쓰려고 노력한다. 우리말에서 주는 어감이 참 좋기도 하고 좀 더 따뜻한 느낌이랄까. 내가 기획한 이벤트 중 ‘한톨나눔축제’나 ‘40일의 약속’, ‘행복한 만찬 콘서트’ 등 최대한 우리말로 제목을 정한 행사들이 많다. 아무리 영어가 공용어로 높은 지위에 있다고는 하지만 요즘 공공디자인을 보면 한글 표기보다 영문 표기가 먼저여서 여기가 한국인지 미국인지 헛갈릴 때가 있다. 지자체의 슬로건도 온통 영어 일색이니 세종대왕님이 통탄하실 일이다. (할 말은 많으나 이쯤에서 그만하자)


이름이 정해지면 그 다음은 디자인. 디자인은 행사명의 이미지에서 활용하기 때문에 이름이 그만큼 중요하다. 개인적으로는 컬러풀한 느낌의 색감을 좋아하기 때문에 알록달록한 이미지를 많이 쓰고 싶은데 주변의 반대가 심해 자주는 못 쓰고 있다. (너무 유아틱 하대나 뭐래나...)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현장인데 행사 전 셋업할 때가 가장 가슴 설렌다. 내가 준비한 포인트들에서 감동 받을 관객이나 참가자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두근한다. 관객들이 이 공연에 몰입하며 빠져들게 만드는 방법은 우선 처음 행사장을 방문했을 때 압도감을 느낄 수 있도록 공간을 배치하는 것이다. 대형 현수막을 걸거나, 컬러를 이용한 디자인, 그리고 물품들을 칼각으로 일렬로 배치하는 것도 압도감을 주는데 한몫한다. 그래서 저절로 와~ 하고 탄성이 터져 나오게끔 한다면 그 이후부터는 아주 쉽게 풀어나갈 수 있다.


P의 특성상 모든 일이 잘 될거라는 ‘무한긍정’의 믿음이 있다. 내 머릿속에는 이런 그림이 그려져 있으니 당연히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그림이 보일거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일이란 일단 시작하면 알아서 다 잘 흘러갈거라는 그런 굳센 믿음. 때론 그런 믿음에 발등을 찍히기도 하지만.


사실 P들이 아무런 대책없이 무작정 움직인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만은 않다. 수많은 계획을 세워도 현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럴때는 순발력과 판단력이 중요한데 그 순간적인 판단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기획이 중요하다.


참신한 기획은 기발한 상상력에서 나오고, 그 상상력은 많은 것들을 보고 경험하는데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여러 콘텐츠들을 보다 보면 거기서 아이디어들이 툭 하고 튀어나올 때가 있다. ‘세상의 모든 창조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또 다른 편집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많이 볼수록 많이 나온다. 그러기에 거리로 나가 많은 공연과 이벤트들을 경험한다. 매사에 계획적인 J 보다는 어느 순간 툭 튀어나오는 상황을 즐기는 P가 더 좋은 이유이다.


그래서 난 오늘도 계획적인 P와 감각적인 J 사이를 꿈꾸며 뭐하고 놀지를 계획하고 가끔 멍때리다가 (아내 몰래) 신나게 노는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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