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년 동안 이 곳에서 많은 행사들을 진행해왔다. 규모가 큰 이벤트부터 소규모 행사까지. 내가 메인 PM을 맡은 행사도 있었지만 자문 역할로 업무지원을 갔던 적도 있었다. 행사 때마다 함께 도움을 준 간사님들은 저마다 역할을 하며 각각의 스팟에서 많은 인증샷을 남겼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는 이벤트 때 찍은 사진이 별로 없다. 전체 행사를 총괄하느라 바쁘기도 했고, 그런 나를 찍어주는 사람도 없어서다.
영어를 처음 배울 때 여러 법칙들 가운데 어려웠던 것 중의 하나가 묵음법칙이었다. christmas의 t 라든지, knowledge의 맨 앞에 오는 k, autumn의 n 등 분명 있는데 소리를 내지 않는 철자들이 있다. 존재하지만 보다 매끄러운 발음을 위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감추는 역할이다. 애초에 처음 단어를 만들 때부터 스펠링을 빼고 만들었으면 쉽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러다 내린 결론은 발음이 같은 다른 단어와 구별하기 위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하는거다. 발음되진 않지만 그 철자가 있어야지만 다른 단어와 확실히 구분된다는 점. 그것이 그 단어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마법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성경에도 보면 마리아와 마르다의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님이 한 마을에 들어가실 때 자기 집으로 초대한 마르다. 그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예수님 앞에 앉아 말씀 듣기에 집중한다.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는 마르다는 그런 마리아가 못마땅하다. 언니가 바쁜데 당연히 동생도 같이 도와야지. 그러다 결국 서운한 마음을 표출한다.
‘예수님,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는 것을 생각 안 하고 있네요, 언니를 도와주라고 말 좀 해 주세요.’
그러자 예수님은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다.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왜 예수님이 마리아 편을 드셨는지 의아했다. 물론 말씀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말씀을 잘 듣게 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그걸 준비하는 사람의 수고가 얼마나 큰지 모르는 것 같다며 불평 아닌 불평을 했다.
그랬다. 나는 마르다였다.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치러내고 참가한 사람들이 만족감과 감동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백스테이저(Backstager)였다. 하지만 간혹 내 수고를 몰라주거나 내가 드러나지 않을 때 밀려드는 섭섭함은 어쩔 수 없었다. 다른 간사님들이 행사장에서 사진을 찍으며 즐기고 있을 때 여러 가지 일들을 치러내느라 분주한 마음으로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그러다 문득 묵음을 떠올렸다. ‘소리는 나지 않지만 그 자리에서 묵묵히, 그것을 빛나게 하는 특별한 존재’. 나를 죽여 그 행사의 목적을 빛나게만 할 수 있다면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것쯤이야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겠다 싶었다.
이제는 행사장에서 찍은 사진이 없어도,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나는 묵음이니까.
그래도 누군가 인스타용 사진은 찍어주면 참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