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책갈피

촘촘한 기억으로 더 나은 '나'가 되는 방법

by 연사백

다양한 사람의 능력 중 특히 나에게 부족한 부분을 생각해 보면 그건 기억력이다.

나는 유달리 과거에 대해 기억을 촘촘하게 하지 못하는 편이다. 어릴 때는 그게 인생에서 그렇게 중요한 미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체감상 시간이 더 빠르게 흐르게 느껴지는 만큼 과거의 기억이 촘촘하지 못하다는 게 슬퍼지곤 한다.


나와 내 친구의 기억 방식


나는 과거를 장면과 냄새, 당시의 느낌으로 저장한다. 2016년 8월 21일에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떤 이벤트가 있었는지 정확하게 회상하기 어렵지만, 머리에 남아있는 장면으로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과거를 기억한다.


반면에 내 친구 N은 날짜를 토대로 한 기억력이 뛰어나다. 정확한 연도와 날짜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명확하게 기억하고, 이 친구는 숫자에 대한 감각도 뛰어나다.


당연하게도 내 친구 N은 나보다 더 많은 과거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는 날짜 별로 마치 게임 저장을 하듯 기억을 저장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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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면 내 친구 N은 정확한 날짜로 구분된 기억의 지점들(At 몇 월 며칠 우리가 어디로 놀러 갔는지)로 과거를 회상하는 반면 나는 장면과 냄새, 느낌을 토대로 대애충 어디께(놀러 갔는데 태풍을 만난 기억 In 2014~15년 때쯤)로 기억한다.


나는 그 친구가 촘촘한 기억(과거)을 토대로 내일은 좀 더 나은 판단, 결정을 하는 친구라서 좋고, 한 편으로는 부럽다. 그 촘촘한 기억은 그 친구에게 오늘 그리고 내일 좀 더 나은 판단을 하기 위한 훌륭한 무기이자 친구 N 그 자신이 좀 더 풍부하고 다채로운 과거를 가진 사람이 되게 하니까.


그래서 이 친구와 같이 과거를 기억해보려고 한 때 시도했으나,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기억의 방식을 바꾸는 대신 좀 더 많은 이벤트로 오늘을 만들어서 뒤돌아 보았을 때 정확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는 못해도 마치 내 과거에 책갈피를 꽂아 넣듯 기억할만한 장면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굳이 이런 일을 습관화하려는 이유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기억하는 기간이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보다 어른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지나가보니 순식간이더라'를 나도 경험하고 있고 어느 순간 그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기억의 기간


학생일 때는 내 기억의 단위는 기본적으로 '주' 단위였다. 매일매일 하루가 굉장히 길었고, 초등학생 때는 무슨 요일에 어떤 만화를 보고, 어떤 날에는 어떤 학원을 가고, 내일모레 누구와 놀기로 했는지 알아야 했고, 중학생과 고등학생 때는 매일의 학교 일과와 학원 등이 주 단위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직장을 다니고 나서는 '월' 단위로 기억하게 되었다. 매 월 월급날을 기준으로 돈이 나가는 날짜 들어오는 날짜가 중요한 기준이었으며,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과거를 회상하려고 해도 비슷비슷한 하루하루로 특별한 일이 없다면 내 기억방식으로는 저번 달에 했던 일도 잘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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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어느 날 내가 회사 친구들과 스쿠버 다이빙을 하러 필리핀을 다녀왔고, 2달 뒤 대학생 시절 친구들과 전주를 놀러 갔다면, 그 중간에 자잘한 기억들이 남아있지만 먼 시간이 지난 후에 두 이벤트 사이에 내 중요하지 않은 기억은 휘발되어 가면서 어스름하게 남아있다가 결국에는 '공백'으로 변하게 된다.


난 그 기억이 공백처리 되는 것과 내 체감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 두렵다. 뒤돌아보면 기억과 기억사이가 텅텅 빈 사람이 되는 것만 같아서.


그래서 문득 누군가에게 내 과거 경험이나 일들을 말할 때 자기는 그런 기억이나 추억이 없어서 부럽다고 한다면, 난 꼭 내 기억방식을 이야기하면서 혹시 나와 같은 방식으로 기억을 하는 사람이라면 엄청나게 특별한 일을 하지 않더라도 기억할만한 일을 하라고 말해준다. 이른바 기억의 책갈피 꽂기.


기억의 책갈피를 미리미리 꽂아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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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책갈피를 꽂는 일은 생각보다 단순하고 심플하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반복되지 않을 만한 일이나 행동을 하거나 아니면 기억할만한 무언가를 찾으면 된다. 나머지는 기억이 해결해주니까.


정확한 날짜는 가물가물하지만 첫 회사의 입사날, 여자친구의 손을 용기내서 잡는 날처럼 강렬한 기억이 남는 일들 외에 원래는 안가봤던 길을 가게 되면서 가지 않았더라면 미처 알지 못했던 까페나 맛집을 알게된 것들 등 사실 인생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일들도 그저 다른 길로 감으로써 반복되지 않은 행위 하나에 그 길을 간 장면이 기억에 남게 되었다. 그리고 이 별 것 아닌 일은 친구가 우리 동네에 놀러오면 어제의 나보다 맛집을 한 개 더 소개해줄 수 있는 나를 만들었다.


이런 사소한 일들이 모이고 모여, 시간이 흐르고 흐르면 적어도 그 전의 나보다 더 맛집을 잘 아는, 동네 맛집을 더 소개하는, 이런 사소한 기억 모아 다듬어 언젠가 글로도 쓸 수 있는 나로 만들어 줄 것이다.


역시나 오늘 나는 내 기억법과 기억에 책갈피를 꽂으라는 이 글을 쓴 날을 잊지 못할 것이다. 막연하게 생각만 했던 일들을 정리해서 남김으로써 내 기억에 '기억법을 정리해서 남긴 언젠가'로 꽂혀 있을 테니까.


커버이미지 출처 : Unsplash, Erol Ahm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