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홍 부장의 충고
앞서 이야기했지만, 홍 부장은 완벽한 여성이다. 대학을 수석 졸업했다더니 실제로 엄청 똑똑할 뿐 아니라, 47살인 나이와 달리 몸매도 완벽하다. 배가 평평할 뿐만 아니라 다리도 늘씬하다. 아이를 낳은 몸매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다. 오늘은 반바지에 부츠를 신고 몸에 착 달라붙는 니트를 입고 왔는데, 나로서는 평생 단 한 번도 입어본 적이 없는 패션이다. 그런데 홍 부장도 단점이 있다. 엄청나게 입맛이 까다로운 것이다. 매번 식사를 할 때마다, “이 동네엔 제대로 먹을 게 없다”고 불평을 하는데, 그 말도 한 두 번이어야지, 밥을 먹는 우리마저도 불평을 듣고 있자면 입맛이 떨어지는 것이다. 벌써 몇 년 전 일이긴 하지만, 우리 회사에 캡슐형 커피 머신이 들어온 것도 홍 부장 때문이다. 더 맛있는 커피를 먹게 되었으니 ‘홍 부장 덕분’이라고 해야겠지만, 그녀가 매번 회사에서 내려먹는 커피가 맛이 없다며 계속 이것 저것 주문을 하는 바람에 대표가 차라리 그럴 바엔 캡슐 커피 머신을 사라도 한 것이다.
우리 회사 주변에 맛집이 없는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회사 바로 아랫층에 꽤 음식을 잘하는 백반집이 있는데다가 근처에 중국집이며 우동집, 샌드위치 집이 있다. 조금 더 걸어가면, 파스타 집도 있고, 심지어 채식주의자를 위한 비건 식당도 두 개나 있다. 물론 이 대여섯 가지 가게들을 번갈아가며 먹는다는 게 질리는 것도 사실이지만, 다른 직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채식주의자인 막내 송희도 불평을 않는데 어째서 매일같이 홍 부장은 불평을 하는지 모르겠다.
오늘은 유달리 허기가 지는 날이었다. 출근할 때 세 정거장을 걸었기 때문이다. 살을 빼기 위해선 걸음수를 늘려야 한다고 하기에, 시간이 좀 여유가 있는 날이면 버스를 세 정거장 전에 내려서 걷고 있다. 언젠가 책에서 읽었는데, 우리 인간의 몸은 유전적으로 구석기 때의 상태와 동일하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저곳 다니며 식량을 채집하던 구석기 시대 사람들처럼 반나절은 걷고, 또 채식을 중심으로 식사를 해야지 몸에 맞고 건강하다고 한다. 그때에 비해 현재는 지나치게 곡물을 많이 먹고, 육류나 지방 등 과한 칼로리 섭취를 하고 있는 게 현대인 비만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결국 오늘날 우리가 이처럼 비만으로 고통받는 것은, 변함 없는 유전적 조합과 달리 현대의 생활방식에 커다란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꽤나 그럴 듯한 내용이라고 여겨져, 그 다음부터는 가능하면 구석시 시대 사람처럼 살아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걸음수를 늘리고, 육류보다는 땅콩류를 통해서 지방을 흡수하고, 가능한 한 채소류를 많이 섭취하고 등등.
물론 홍 부장이 이런 나의 노력을 알 리가 없다. 날씬한 애들은 뚱뚱한 사람을 이해 못하는 법이다. 오늘 우리는 백반집에서 부대찌개를 시켜먹고 있었다. 나의 맞은 편엔 홍 부장이 앉았다. 다들 알다시피 부대찌개엔 라면이 들어간다. 나는 라면을 딱히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면발이 불어터질 지경이어서 어쩔 수 없이 젓가락으로 건져 먹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던 홍 부장이 뜬금없이 “이 팀장, 면발 좋아하지? 지난 번에도 콩국수 다 먹더라. 그러니까 살이 찌는 거야.” 매번 음식 불평을 듣는 것만으로도 질리는 참이었는데, 이제는 직접 나한테 대고 뭐라고 하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럼 날씬한 자기가 먹을 것이지. 아니면 처음부터 라면을 주지 말라고 하던가. 나는 먹던 라면을 그 자리에서 뱉을까 하다가, 살찐 사람이 죄인이라고 그냥 삼켰다.
물론 별 이야기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뚱뚱한 사람에겐 몸과 관련된 모든 단어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가 되어 꽂히는 법이다. 괜히 울적해졌다. 어째서 난 라면 면발 몇 가닥에 이렇게 비난을 들어야 하는 건가. 앞으로 날씬한 애들은 인간 취급을 안 하리라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