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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또 쿨럭

친구란 무엇일까

by 나명랑

미국에 사는 H가 온다고 몇 년만에 중학교 친구들 모임에 나간 게 문제였을까. 은둔 생활을 잠시 접고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는 게--게다가 또 얼마나 많은 말을 듣고 또 해야 할 것인가--영 내키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꼭 보자는 친구들의 다정하고도 부드러운 요청을 거절할 만한 핑곗거리가 딱히 없었다. 각종 사건과 처리해야 할 일 속에 굳이 만들려고 작정했다면 하나쯤 만들어낼 수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생각을 하는 것조차도 불편하고 힘겨웠다.


만남은 따뜻하고 순조로왔지만, 나는 즐겁지 않았다. 그건 그들의 문제였다기보다는 순전히 내 문제였다. 나는 어느새 사람들과의 만남이 전혀 즐겁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중간에 박차고 일어날 수도 있었지만, 어느새 내 몸은 식사를 마친 그들과 함께 시장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고, 주전부리를 사서 그들이 함께 묵을 숙소에까지 이르렀다. 그곳에서 이야기는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계속 되었고, 늦은 밤이 되어서야 나는 혼자 집에 가야겠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정한 그들은 택시 타려는 나를 큰 길가까지 배웅해주었다. 입안에 모래알이 도돌도돌 씹히는 것 같았다. 물론 삼킨다고 죽지는 않는다.


피로했던 것일까. 죽은 시체마냥 쓰러져 잠이 든 뒤, 아침에 일어나니 난데없이 기침이다. 쿨럭, 또 쿨럭. 친구란 무엇일까,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내가 고민이 있을 때 연락할 리 없고, 어려울 때 도움을 요청할 리 없고, 그러나 가끔 만나면 서로 근황을 묻고, 부모님의 장례식에는 참여하는 관계. 우리가 모두 그렇다는 건 아니다. 그들 간의 관계는 나와 그들간의 관계보다 훨씬 더 친밀할 지도 모른다. 나에게 중학교 친구들만 그런 것도 아니다. 고등학교 친구들, 대학 친구들도 거의 다 그렇다. 굳이 따지자면, 나의 문제이지 그들의 문제는 아니다. 나는 모든 이로부터 떠나온 은둔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반나절의 만남만으로도 감기에 덜컥 걸려 버리는 피곤한 육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삶의 고비고비, 힘겨운 순간마다 나는 늘 혼자였다. 내가 먼저 말하지 않았으니 다른 이가 알 리도 없고, 도와줄 생각이 있었을 친구들도 도와줄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말하지 않았던 까닭은 말할 힘조차 없었고, 어떻게 말해야 할 지 내 속에서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다보니, 문제들은 해결되거나 또 잊혀졌고, 과거는 단순히 한 문장 정도로 요약되곤 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루 아침에 성격이 변할 리는 없으니, 나는 여전히 내면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존재로 살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생명이 다 하면, 많은 과거의 인간들처럼 나도 세상의 먼지로 조용히 돌아가겠지. 나의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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