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아들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어떤 엄마의 글을 보고
매사 지독하게 말을 듣지 않고, 학교를 제멋대로 안 간다고 고집을 피우고, 기껏 등록해놓은 학원은 빠지고, 오로지 핸드폰과 컴퓨터 게임에만 몰두하는 초등학교 4학년 남자아이의 엄마인 모양이었다. 아이키울 자신이 없어서 낳지 않으려고 했는데, 남편과 시가족의 설득으로 낳았다고 한다. 직장을 다니는데, 직장일에 대해서는 크게 불만이 없는지 별 말이 없었다. 자식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단다.
말 안 듣는 아이를 매일 같이 설득하다가, 논쟁하다가, 이것 저것으로 어르고 달래서 약속을 받아내지만,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또 다시 마구잡이로 사는 모습에 분노와 피로가 축적되다보면, 게다가 학교에서는 문제를 오로지 엄마가 제대로 돌보지 못한 탓이라고 바라보는 것을 반복적으로 겪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매일 직장으로 피로한 일상 속에서, 집에 들어와서 제대로 쉴 틈조차 없이 새벽까지 게임 그만하고 자라고 반복해서 말해야 하고, 몇 시간 자지도 못한 채 아침엔 학교 가라고 깨우고 준비시켜야 하고, 서둘러 출근을 해야 하고, 이 모든 반복 속에서 결국 아이로 인해 일상이 도저히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워지면, 산다는 게 지옥처럼 느껴질 수 있다. 아이는 이럴 때, 그럼 왜 낳았냐고, 따지면서 도리어 부모 탓을 할 것이다. 이쯤 되면, 같이 죽든지, 내가 죽든지, 아니면 아이가 죽어야 끝날 것만 같은 끔찍함이 느껴질 만하다. 그래도 어떻게 자식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느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그 마음이 이해가 된다.
문제는 이 엄마가 초등학교 4학년인 아이에게 직접 그 말을 뱉었다는 사실이다. 집을 나가서 들어오지 말든지, 아니면 어디 가서 죽어버리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설마 설마 하면서 눈을 비비고 몇 번이나 다시 보고는, 충격을 받아 멍했다. 마치 그 외침을 듣고 있던 사람이 나였던 것처럼. 아이는 그때부터 집에 안 들어온다고 한다. 아마 나라도 그러지 않았을까. 순간적으로 그런 마음이 들 수는 있지만, 그래도 내뱉지는 말아야 했다. 그 말은 두고 두고, 아마도 평생토록 마음 어딘가에 총알 자국처럼 남아있을 것이다.
학교는 더 이상 아이들에게 재미있거나 무언가를 배우는 장소가 아니다. 교사들은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망연자실하고, 각자의 욕망 속에 움직이는 학부모들의 아우성은 심해지고, 아이들 중에는 심지어 교사에게 욕설을 하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을 조금이라도 겪거나 들어본 사람들은 아이를 낳거나 키울 생각이 없을 수밖에 없다. 저출산이 문제라며 비판하는 정치인들을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오히려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사람들이 현실적인 감각이 있다고 느낀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어떻게 아이를 키우란 말인가.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모두 불행만을 가져다 줄 뿐이다.
집을 나갔다는 초등학교 4학년 남자 아이는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결국 집에 돌아왔을까. 엄마가 알았으면 좋겠다. 아이들 중에는 학교를 안 다니거나 쉬는 경우도 있고, 그러다가 다른 대안 학교를 다니거나 홈스쿨링을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학원은 다니기 싫다면 굳이 보내지 않아도 된다. 컴퓨터 게임과 핸드폰은 그 아이뿐 아니라 오늘날 거의 모든 아이들이 몰두하는 일이다. 딱히 다른 즐거운 일이 없지 않은가. 다른 친구들을 만나서 놀 방법은 그것 외에는 없지 않은가.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마음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