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타령
무슨 일이든 '기준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기준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맞는 말이지만, 기준을 잘못 적용하면 그것도 문제가 된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철저한 내 주관이므로 참고만 하길.
쉽게 말하자며 기준은 '법'이다.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목록에 가깝다. 이것을 보충해 주는 것이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실천 목록이라고 할 수 있다. "1) 이렇게 하지 말아야 하고 2) 그래서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식의 사고방식 또는 신념이 '기준'인 것 같다. 기억할 것은 1)의 힘이 더 크다는 것이다.
엄격한 가정환경은 아니지만 '기준'에 대해서 귀가 따갑게 듣고 자랐다. 최소한 내가 느끼기엔. 앞에서 말한 "이렇게 하지 말아야 하고 그래서 이렇게 해야 한다"는 말을 하루에도 수십 번은 들었던 것 같다.
이런 기준이 무너지는 순간, 파괴되는 순간, 기준이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이 있다. 몇 마디의 말로 한 순간에 의미가 없어진다. 바로, "왜 그렇게 해야 하죠?"라는 질문을 던질 때다. 여기서 문제가 심각해진다.
지금부터는 이해를 돕기 위한 예시일 뿐, 생각하고 판단하는 건 여러분의 자유. 비판하는 것도 자유. 내가 겪은 것을 바탕으로 각색했다.
A: 나 아이폰 쓰고 싶은데. 성능도 아이폰이 좋고.
B: 아이폰 비싸지 않아? 그냥 삼성폰 써.
A: 바꿔야겠다.
B: 그냥 '우리나라에서 만든 거' 써. 뭐 하러 외국제품을 써.
여기서 B의 기준은 "우리나라에서 만든 거 아니면 쓰면 안 된다, 그래서 아이폰을 쓰지 말고 삼성폰을 쓰라"는 주장이다. 이런 말을 들은 A의 머릿속은 '지금 네가 차고 있는 시계도 미국 브랜드인데?'라는 반문으로 가득 찬다.
A: (다리 떠는 중)
B: 다리 떨지 마, 정신 사나워. 복 나가.
A:?
너무 심하게 다리를 떨고 있다면 말할 수 있지만, '이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할 때는 매우 조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내뱉은 기준에 자기가 걸려 넘어지게 된다.
세상에는 수많은 기준이 있고, 저마다의 기준을 설파한다. 그러나 그 기준에는 분명한 근거와 사실, 또는 경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기준이 아닌 하나의 주장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기준이라고 하는 것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자에게는 흔히 이런 평이 쏟아진다. 내가 그 대상이었으니까(물론, 아무 때나 질문하지 않는다).
기준이면 '그냥 그런 건데', 왜 따지려고 하냐.
기준이라고 하니까, 그냥 그대로 순종해야 하는 거야.
법이 있으면 지키는 것과 마찬가지야.
나는 '기준'이라는 단어로 포장된 '개인의 주장'이 '절대화'가 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의 기준, 아니 기준이라고 포장된 주장은 오로지 자기에게만 적용할 수 있다. 객관적으로 모두에게 완벽하게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없다. 이 세상에 그런 기준 또한 없다.
"이게 기준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며 '쟤, 왜 저럴까' 생각한다. "이게 기준이야"라고 말할 필요 없이, 자기가 그 기준대로 살아가면 될 것을. 무엇하러 말하는 걸까.
지긋지긋한 기준 타령에서 벗어나고 싶다. 오해 마시길, 그렇다고 해서 '기준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