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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ti PostModern Mar 05. 2024

沈 : 혼돈

 심제(深弟). 내게는 너무나 과분한 이름이다. 깊음과도 거리가 멀고 배움과도 친하지 않은 사람이기에. 아름다운 이름이, 아름답지 못한 나를 괴롭게 했다. 버리고 싶다 해서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렇게 불리고 싶지 않아도 불리는 아호가, ‘깊을/심’이라는 한자가 너무나 무거웠다. 

 20살이 되고 깊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정확히 표현하면, 더 깊어지고 싶었다.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줄 아는 눈, 생각지 못한 것을 생각해 내는 사고, 표현하지 못한 것을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드러내는 필력을 얻고 싶었다. 하지만, 더 깊어지고 싶다는 말이 성립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했다. 얕다고 할 수 있는 깊이조차 가지지 않은 자에게 ‘더 깊어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모든 것을 무가치하다고 여기고 비관적으로 바라보며 반대하는 것이 전부였고 부정하는 태도가 일상이 되었다. 하면 안 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내가 나 자신을 깎아내리는 정도가 아닌, 죽음으로 내몰기까지 했다. 무엇이 문제였는지 지금도 불분명한 것으로 남아있다. 훗날 20살을 기억할 때, 해석할 수 있으면 좋겠다. 

 깊은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알지 못하는 곳으로 가라앉았다. 헤어 나오고 싶은 마음조차 생기지 않는 곳으로 내려갔다. 이 글은 그 가라앉음에 대한 이야기다. 다른 사람이 볼 때 ‘비정상적’이라고 할 만한 부분부터, 눈살이 찌푸려지거나, 역겨워서 읽기 어려운 내용이 다소 포함됐다. 절망적이었고, 비관적이었으며,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될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써 내려가는 이유는 이러한 기록이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라는 일말의 희망 때문이며, 꺼내놓지 않으면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나 자신을, 너를, 이 세상을, 창조주를 억누르게 했던 얕고도 얕은 자아(自我)와 자기(自己)를 드러내고자 한다. 

 이 작업은 오로지 나를 위한 것이다. 누군가 읽어도 상관없는 글이고, 공개되어도 문제없는 글이지만, ‘좋은 영향을 주는 글이 아님’을 분명하게 밝힌다. 따라서 이 글을 읽고 비난을 해도, 비판을 해도 좋다. 오히려 비판받을 만한 글을 썼음이 증명된 것이기에 나는 기뻐할 것이다. 위선자, 배신자라는 수식어가 붙어도, 배교자라는 이름을 붙여도 괜찮다. 독자들의 자유이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나 다시 한번 밝히면 이 글은 영향을 주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닌 필자가 자유롭고 싶어서, 편히 숨 쉬고 싶어서, 살고 싶어서 ‘이기적으로 쓰는 글임’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뛰어난 글솜씨를 뽐내고 싶지도 않고, 그럴 만한 능력 또한 없다. 독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독자가 필자뿐인 글을 남발할 예정이니, 큰 기대는 내려놓으시길. 단발적이고도 산발적인, 그리고 우발적인 나의 사고를 파헤치고자 여정을 떠나본다. 

 이 여정의 이름은 ‘혼돈’이다. 태초에 천지가 창조되었을 때, 땅이 혼돈하고 공허했던 것에 비유했다. 나의 해석이 맞을지 모르지만, 창조의 과정은 ‘혼돈’이 아닐까 감히 기록한다. 혼돈의 과정, 창조의 첫 단계를 거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혼돈예찬’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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