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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ti PostModern Mar 06. 2024

종교에 관한 잡생각

1. 지금 쓰는 글은 종교에 관한 잡생각, 종교 생활자들에게는 매우 불편하고 더러우며 불손한 생각이라고 여겨질 것이다. 내가 느낀 종교를, 괴로움으로 점철되었던 순간과 함께 돌아보고자 한다.


2.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어느 순간, 믿음을 지킨다-그 믿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는 나의 모습이 불쌍해 보였다. 자기 연민이랄까, 굳이 어렵게, 굳이 힘들게, 굳이 하지 않아도 ‘당장은 문제없는 것’을 하는 것에 지쳤다. 종교적 행위는 기계처럼 변하지 않고, 고정적으로 하는 편이다. 종교적 내용, 신앙은 없는 괴이한 상태였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에 무너지면 안 된다고 신앙인들은 이야기한다. ‘과연, 신은 눈에 보이는 것을 무시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받아쳤다.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현실을 배제한 망상이 아닌가 싶었다. 그것은 한낱 종교가 아니면 무엇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3.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종교적 행위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매일 새벽예배하고, 통학하는 중에도 성경 읽고, 모든 모임에 참석했다. ‘했다’고 해서, ‘이것만’으로 신앙이 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됐다. 그저 해야 하는 것이기에 했을 뿐이다. 그런데, 해야 할 것만 남은 인생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려고 하면 ‘죄’가 되었다. 해야 할 것만 하는 인생에는 그 어떤 재미도, 기쁨도 없는 것 같다. 종교는 항상 내게 책망했다. 해야 할 것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리고 극단적으로 선언했다. ‘그렇게 할 바에는 하지 않는 것보다 못하다고’. 이에 대한 나의 답은, ‘그래, 하지 않을게’였다. 

     

4. 종교는 특이한 화법을 구사한다. 멀리서 바라보면 어딘가 부자연스럽다고 느낄 것이다. 종교에 깊이 발을 넣은 사람에게 이야기하면 ‘미친놈’ 취급을 당할 것이다. 광신도에게 미친 사람 취급을 받는 것이다. 종교는 ‘복으로 협박’한다. 종교가 말하는 복-추상적이고, 비실재적이며, 오직 종교라는 특수성에서 말할 수 있는 개념-은 협박의 도구로 작용한다. 이렇게 하면 복 받을 것이고, 하지 않으면 저주받을 것이라는 논조로 일관되게 말한다. 듣다 보면, 복을 주고 싶어서 복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아니면 저주하기 위해서 복이라는 개념을 갖고 온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또한 종교는 ‘행복으로 통제’한다. 종교가 말하는 행복-죽기 전에 닿을 수 없는 추상성,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처럼 조장해 놓은 거짓말-은 통제의 도구로 작용한다. 인간의 자율성을 인정하는 것 같지만, (도무지 알 수 없는) 종교적 행복이라는 도마 위에서 완전히 박탈당한다. 종교적 행복 또는 기쁨을 느끼지 못하면 ‘비신앙인’으로 간주된다.    

 

5. 나의 가치관의 뿌리는 기독교에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는 유교적 바탕 속에 자랐으며, 사용하는 용어 중 일부는 불교를 바탕에 두고 있다. 철학적 사고는 그리스 고대 종교에 영향을 받았으며, 근대적(반기독교적) 학교 교육에는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이 있었다. 수학적 기호는 이슬람교의 영향을 받았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인 현재, 나는 종교의 영향 아래 있다. 종교에 관한 잡생각을 짧게 정리했지만, 내게 있는 종교성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바울이 현재 내 모습을 보며 이렇게 말할 것 같다.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6. 종교에 관한 잡생각의 결론은 매우 역설(모순)적이다. 인간이 이해로 이해할 수 없는 고차원적인 논리성이 종교의 바탕이다. 종교만큼 논리적인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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