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ti PostModern Mar 08. 2024

나는 어려운 사람입니다 : 기성세대 비판

1.     

 20살, 내게는 혼돈의 시기였다. 좋게 기억될 것이 없다고 할 만큼 잊고 싶은 순간으로 가득한, 애매모호함 자체다. 나뿐만 아니라, ‘20살’을 지나는 수많은 사람이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원망하기도 지쳤고, 욕하기도 버겁다. 

 20살, 법적으로 성인이 되는 시점. 아니, 그저 미성년자라는 이름표를 떼어내는 시점인 것 같다. 미성년자도 아니고, 성인으로 인정한다고 하지만 성인이 아닌 애매한 곳에 놓인다. 자유로운 듯 억압되기를, 억압된 듯 자유롭기를 반복한다. 무엇을 따라가야 하는지 알 수 없는 혼란스러움을 품고 지나가는 시기다. 

 20살, 다른 사람이 20살이 된 나를 보고 ‘(부정적으로) 변했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려운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타인의 생각은 나의 영역이 아니기에, 그저 수용하지만, ‘왜’라는 물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어려운 사람이 20살을 어떻게 보냈는지, 무엇이 가장 싫었는지, 어떤 사람들이 역겨웠는지 ‘어려운 내용’을 담아 글을 쓰고자 한다.      


     

2.     

 이렇게까지 살고 싶지 않습니다.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함께 살아간다. 그러나 ‘함께’라는 말로 억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쉬운 예로 ‘가족’을 들 수 있다. 인간은 가족 구성원으로 존재한다. 자식과 부모, 형제가 함께한다. 부모의 가르침에,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그러나 순종만 하는 것은 틀렸다. 어떻게 모든 문제가 ‘순종’이라는 단어로 단일화될 수 있는가. 내가 본 바로는, 부모이면서 자식-기성세대-인 사람들이 자기 부모의 말에 순종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기성세대는 ‘순종’이라는 단어를 앞세워서 ‘자기 뜻을 자기 방식대로 이루어야 하는 사람’인 것 같았다. 이렇게-누군가 내게 요구하고, 해야 한다는 말로 강요한 것들-까지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가장 컸다. 

 자기 시절을 현시점으로 끌고 오지 마시길. 사회적으로 ‘꼰대’라는 말이 유행어로 자리 잡았다. 자기 고집이 강한 사람을 저급하게 부르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이는 이러한 현실을 빼어난 문장으로 표현했다. “늙어가는 사람은 현재의 문화적 현상을 자신의 시대였던 과거라는 관계 지점에 따라 해석하려는 시도만큼 그만큼 현재로부터 소외된다. 그에게 미래이자 세계와 공간을 약속해 주었던 그의 과거는 이미 흘러가 버린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 소외로 비롯된 낯섦의 정체는 무기력한 거부와 불쾌감으로 표현되는 불안함이다.1)” 과거라는 자기 시절에 따라 현재를 해석하려고 시도하면 시도할수록 ‘소외’될 것이다. 어쩌면 그런 소외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말-“나 때는 이랬지”, “요즘 애들은 이상해”-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낙’ 일지 모른다(어떤 이는 과거의 세대에게 배우지 않으려는 듯한 나의 태도를 비판할 수 있다). 세상의 중심에 있던 자신이 주변부로 밀려나는 것 같다는 느낌으로 인해, 할 수 있는 것이 추억에 잠기는 일뿐인 것이다. 과거의 것이 좋고, 현재의 것이 나쁘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별 차이 없다. 그때도 유행이 있었고, 당신이 (문화적으로) 추구하는 것 대부분 그 당시 관습 또는 유행하던 것들이다.”          



3.     

 나는 과거를 무시하고 싶지 않습니다. 단지,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음을 기억해 달라는 것입니다. 요즘 애들, 개인적이고 이기적이며 기본도 갖추지 않은 머저리들. 표현이 과격한가. 기성세대가 살았던, 기성세대의 때에도 ‘요즘 애들’이 있었을 것이다. 요즘 세대가 배우지 못한 것은 기성세대의 가르침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성세대가 다음 세대를 시종일관 구제 불능의 상태로 일축하여 가르침을 회피했다. 자기 시절을 고집하는 기성세대가 자기 시절을 진심으로 끌어오고 싶다면, 자기 시절의 기성세대-자기 부모 세대-처럼 행동하면 된다. 

 나는 과거를 무시하고 싶지 않다. 가르침이 없으면 살아가기 어렵다. 어떤 이가 말한 것처럼, “이전의 어떤 시대도 지금처럼 과거를 철저히 무시하지 않았다. … 과거를 총체적으로 무시하는 풍조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비로소 유행하기 시작한 것2)이다. 현대의 발전을 과학 기술에 초점을 두는 경향이 강하다. 이 발전이 ‘과거보다 좋아졌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자리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는 퇴보함이 분명하다. 우리는 “지금 사는 시대를 과거 및 미래와 연관 지어 바라보아야 하며, 과거의 모순이 지금 우리에게 이상하게 보이듯 현재의 모순 또한 미래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보일 것임을 알아야3)” 한다.          



4.     

 현재는 과거와 미래의 충돌로 이루어진다. 

 나는 이 시대의 어린아이인 것 같다. “어린이들은 자율적이고, 책임을 가지며, 자유롭고, 의식적인 주체로서 자신들을 구성하라고 요구된다. 그리고 동시에 복종하고, 무기력하며, 명령에 무조건 따르고, 순응하는 대상으로서 자신을 구성하라고 요구된다. 어린이들은 모든 면에서, 그리고 모순적인 요구에 대해서 저항한다.4)”

 나는 ‘내 것’이 없는 것 같다. “독창적인 연구를 가장 크게 방해하고 있는 건 아마도 직업 때문에 생기는 번잡한 일거리나 의욕 저하라기보다는 전문가들이 강의 내용을 너무 잘 배우는 거라고 할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스승이나 동료들의 사고방식을 대단히 성공적으로 배웠다면, 진정 독창적이고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생각하는 일은 그만큼 더 어려워진다.5)”






참고문헌


1) 장 아메리, 김희상 옮김, 『늙어감에 대하여』, 돌베개, 2014, pp.139~149.

2) 버트런드 러셀, 장성주 옮김,『인기 없는 에세이』, p.149.

3) 위의 책, p.244.

4) 장 보드리야르, 하태완 옮김, 『시뮬라시옹』, 민음사, 2001, pp.151~152.

5) 토머스 웨스트, 김성훈 옮김, 『글자로만 생각하는 사람 이미지로 창조하는 사람』, 지식갤러리, 2011, p.331.

이전 02화 종교에 관한 잡생각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