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ti PostModern Mar 08. 2024

진리를 전달하는 방법에 관하여

 진리를 가장 명확하게 설명한다면,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시대이든, 어떤 상황이든, 누구에게나 항상 적용할 수 있다. 이 세상에 진리가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는 반면, 없다고 믿는 사람도 꽤 많다. 내가 관심을 갖는 부분은 ‘진리’가 아니다. ‘진리를 전달하는 방법’이다. 앞서 말한 진리의 특징이 ‘불변’이라면, 그 자리에는 ‘옳음’이라는 말도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에 옳고 그름을 적용하면 생각할 수 있는 주제가 꽤 많다. 


 나의 사고의 뿌리는 기독교에 있다. 태생적 뿌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릴 때부터 기독교 가치관을 바탕으로 자라왔다. 소위 말하는 ‘진리’를 들으며 살아왔다. 언제나 옳고 그름을 생각했으며, ‘기독교 = 진리 = 옳은 것’이라는 도식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옳고 그름의 잣대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항상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만 사고하면 그 어떤 것도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없으며, 세상을 편협한 시각으로 이해하게 됨을 발견했다. 그 이후로, 진리가 왜 진리로 여겨지지 않는 것인지에 대한 답을 스스로 구축했다. ‘전달 방식’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진리를 말했음에도, 옳은 것을 말했음에도 진리가 비웃음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진리라는 내용이 아무리 옳다고 해도, 전달 방식에 문제가 생기면 진리는 진리로 전달되지 않는다. 옳은 것이라고 해도, 전달 과정 자체가 틀린 것으로 인식되면 내용 또한 틀린 것으로 인식된다. 문제는 다음과 같다. ‘옳은 것을 옳은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는가.’ 옳은 것을 말한다고 해서 옳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진리를 전달한다고 해서 사람 자체가 진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진리를 말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의 전달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전달 방식에 대해서 생각지 않고, 그저 ‘받아들이지 않는다’라고 일축하는 것은 아닌지.


 어쩌면 진리를 알고 있다고 하는 이들, 옳은 길을 가고 있다고 하는 이들이 ‘잘못된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은 아닌지’, 진리 곧 ‘의’를 훼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전 03화 나는 어려운 사람입니다 : 기성세대 비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