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된 이후, 수 없이 러닝을 도전했었다. 내 마음속에는 '달리기는 해야 건강한 삶이지' 같은 외침이 있었다. 독서와 글쓰기도 결이 같았다.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가 독서광이야!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어야 해!'라는 외침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외침은, 대부분 지속성이 짧았다. 1년에 1~2권 읽을까 말까였고, 꾸준한 러닝도 1주일을 넘기지 못했다.
그러다 2022년 군대에서 내가 달리기 시작했다. 이때의 마음가짐은 단순했다. 몇 KM를 달리고, 얼마의 평균 페이스를 가지는지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건강한 삶과 루틴을 가져보기 위해, 그냥 30분만 달려보자가 나의 마음가짐이었다. 이때의 나는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땀과 함께 흘러가는 무거운 안경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라식을 하고 난 뒤, 나는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다. 그 사소한 행복을 잊은 채로 살아간다. 감사함을 잊은 채로 말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꾸준히 달렸었다. 여기에 기록되지 않은 달리기도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체력검정이 있었고, 분명 30분만 달려보자며 나의 기록에 집중하지 않았는데도 특급을 기록할 수 있었다. 이때의 경험은 정말 신기하다. 기록을 신경 쓰지 않았고, 잘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결국 결과가 좋았다. 나의 특성상, 특급체력을 가지려고 목적을 가지고 뛰었다면 과연 특급을 딸 수 있었을까? 여러 가지 이유와 핑계로 아마 포기했을 가능성이 많다.
내 인생에서 작지만 많은 경우에서는, 결과와 내 마음이 거리가 멀어졌을 때 결과가 좋았고, 퍼포먼스가 좋았다. 결과에 집중할수록, 포기와 가까워졌다.
2022년 4월 한 달 정도. 그때 이후로 나는 다시 러닝과 거리 두기를 했다. 전역 후, 휴학을 하고 방황 속에서 달리기로 한번 나아가보자 마음을 수없이 먹었지만 정말 지속성 따위는 없었다.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매일 달려야 했고, 오히려 그런 마음가짐이 나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 포기들에 감사한다. 이런 수많은 포기들이 있었기에, 나중에 러닝과 가까워질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23년 10월이 되었다. 정말 거짓말하지 않고 갑자기 뛰게 되었다. 가장 친한 친구와 강을 뛰어보자 이야기가 나왔고, 그렇게 30분을 고통을 참아가며 뛰었다. 이전의 포기들 덕분일까, 아니면 어떤 이유에서 일까. 매일 뛰고 싶어졌다.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지만, 러닝이 기다려졌고 달리는 순간이 힘들었고 그렇게 버티고 나면 무언가 개운했다. 큰 마음가짐도 계획도 없었는데 왜 내 삶에 러닝이 다가온 걸까? 그냥 러닝을 할 시기가 온 걸까? 독서와 글쓰기도 그렇다. 그렇게 계획하고 다짐할 때는 읽지도 않더니, 어느 순간 나에게 다가와 2년째 게임과는 거리를 두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으니 말이다.
군대에서 매일 뛰면서 정강이에 피로골절 직전까지 올뻔한 경험이 있었기에 러닝과 살짝 거리조절을 했다. 격일로 뛰자는 마음가짐이 있었다. 루틴이라고는 없었던, 수많은 루틴과 규칙적인 삶을 위해 세웠던 계획과 실패만 가득했던 내 인생에서 달리기라는 루틴이 생겼다.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고, 이것은 분명 나를 성장하게 만들었다.
코로나 시절, 1.5km도 너무 힘들어서 못 뛰던 내가 마침내 50분 만에 10km를 뛰게 되었다. 이때도 그저 격일마다 30분만 뛰어보자는 마음가짐이었는데, 그것이 루틴이 되니 자연스레 더 뛰고 싶었다. 잘 뛰고 싶어졌다. 그래, 계획과 생각과 걱정이 우선이었던 나에게는 '규칙적으로 해보자'라는 마음가짐만 있으면 되는가 보다. 규칙적으로 브런치스토리에 연재하고, 규칙적으로 네이버블로그를 글 쓰고, 규칙적으로 영어 공부를 20분 정도라도 해보자 등등.. 잘해보자는 욕심은 벗어던지고 매일, 격일, 꾸준히 해보자는 마음가짐으로 행동을 하면 나는 자연스럽게 잘해지고 싶은 욕구가 생기고, 그렇게 실력이 생기나 보다.
어릴 때 운영했었던 네이버블로그. 주제를 세 번 바꾸면서도 꽤 성과를 내었다. 이때, 나는 계획은 없었다. 그냥 시작해 보았고, 매일 글을 올리다 보니 잘하고 싶었고, 그렇게 성장했다. 왜 나는 이런 나의 특성을 몰랐을까?
2023년 12월. 축구를 하다 끊어진 힘줄 때문에 자연스레 러닝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그리고 2024년 9월부터 10월까지, 다시 뛰었다. 그리고는 1년이 지난 현재까지 간간히 뛰는 것 말고는 달리기는 내 인생에서 점차 지워져만 갔다.
나는 다시 뛰기로 했다. 15분만이라도 뛰기로 했다. 최대한 매일. 체력도 부족한 게 느껴지고, 무엇보다 내 정신적 건강을 위해서 15분의 투자는 정말 많은 것을 준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러닝화를 산다, 러닝 옷을 산다, 겨울엔 어떡하지? 저녁 약속이 있는 날엔 어떡하지? 이따위의 부가적인 걱정이나 생각들은 뒤로 한 채로 이전에 경험을 토대로 그냥 15분만 뛰어보자는 마음가짐만 가지고 뛰어보려 한다.
오늘 뛰면서 나는 화가 났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이기적일까? 일반화하게 된다. 예전에도, 우리 집은 강이랑 거리가 멀어서 아파트 단지를 뛸 수밖에 없었다.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그래도 이해할 수 있다. 흡연도 해봤던 입장으로서 흡연구역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그래도 집안에서 개념 없이 피면서 다수의 사람들에게 피해 주는 쓰레기들 보다는 비교가 안되니까 나은 사람들이니까. 타인의 불편을 생각해서, 자신의 불편을 감수하는 정상적인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많은 이들은 걸으면서 담배를 피운다. 왜일까? 그들의 이기심 때문에 그들 뒤를 걷고 뛰는 사람들은 무슨 죄일까? 일말의 죄책감이라도 있을까?라는 식의 분노들이 달리기를 하는 와중에 올라온다. 정말 마음 같아서는 주먹으로 담배를 내려치고 싶지만, 나는 겁쟁이다. 이미지를 신경 쓰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리석고 요즘말로 짜치게, 마음속으로만 생각할 뿐이다. 영웅과는 정말 거리가 먼, 그저 범부일 뿐이다.
그러면서, 오히려 내가 이기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달리면서 담배 냄새를 맡기 싫다는 이유로 그들을 뭐라 할 권리가 있는가? 아니면 흡연 구역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사회의 문제인가?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이런 쓸데없고 복잡한 마음을 가지며 다시 마음을 다잡고 노래를 들으며 3km를 뛴다.
세상은 정말 이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