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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진 Sep 16. 2015

충분히 느리고 유쾌하고 까칠하게...

장애여성극단  '춤추는 허리'를 만나다.


척박한 내 생활을 사는 이유를 누군가 묻는다면 난 대답한다.

"내일이 궁금해서.... 이유는 단지 그거야..."

난 늘 내일이 궁금하다. 이렇게 살다 보면 내일은 내가 꿈꾸는 대로 만나지

못할텐데 하면서도 또 다시 주어진 오늘을 살아가며 또 다른 내일을 꿈꾸는 나는

환상가인지도 모르겠다. 그 '내일이 궁금해.'란 말 한마디엔 내가 해야 할 일들도

많고, 하고픈 일들도 많고, 내가 미처 만나지 못했던 또 다른 어떤 일들이

존재한다.    




이번에도 아주 특별한 만남을 통해 '내일이 궁금해'를 엮었다. 예전엔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현실이 되어 나타난 사람들~ 그들을 통해 환상가인 나는

 또  다른 꿈을 꾸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촌스럽고 답답하고 근시안적인

내게 '화~악'하고 내 머리를 친 아름다운 여인들과의 만남이 그것이었다.

그녀들은 바로 장애여성극단의 '춤추는 허리'단원들이었다. 그녀들이 만들어낸

충분히 느리고 유쾌하고 까칠한 이야기가 가슴에 빛 하나를 밝혀주었던 것이다.    



지난 금요일~ 오전에 어린이집에 가서 장애인식 교육을 하고 긴장되었던 숨을

잠시 고르는데 공연을 보러 가자는 제의를 받았다. 그것도 대전이 아닌 서울 홍대~

지끈거리는 머리와 며칠째 계속되는 체기로 인해 몸은 많이 어려웠지만

그 궁금증은 또 나를 일어서게 했다. 성현이를 아는 아지매에게 부탁하고 퇴근 무렵의

시간에 허겁지겁 기차에 몸을 싣고 도착한 곳은 홍대역 부근의

가톨릭 청년회관 CY홀 이었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면서도 난 그녀들이 궁금했다.

그녀들은 과연 어떻게 표현하고 어떻게 전달할까?   


 

[거북이 라디오]~! 그녀들의 공연 제목이다. 거북이~~ 그 제목 자체로 느낌이

왔다. 결코 빠르게 갈 수 없는 이들임을 아이를 키우며 몸으로 체득했으니까...

토끼와 거북이에선 거북이가 결국 이기지 않던가? 그녀들은 그들의 삶을 어떻게

전달할까? 어두웠던 무대에 불이 켜지고 나타난 그녀들~~ 내 머리를 궁금증으로

가득 채웠던 그녀들과의 만남 이후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무엇이 도대체 얼마나 다르기에.... 우린 같은 사람인 것을...!!!    




[거북이 라디오]는 우리에게 친숙한 라디오의 사연을 들려주는 형식을 빌어

장애여성들이 경험한 일상들을 들려준다. 그 경험들은 다른 이들의 경험과

마찬가지로 그녀들이 각자의 삶에서 겪었던 경험을 토대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겪어야 했던 아픔과 좌절과 고통의 경험들을 그렇게

전해준다. 라디오 디제이의 소개로 이어지는 그녀들의 이야기~ 사람이기 이전에 장애란

멍에로 쳐다보는 많은 시선들 속에서 당당히 살아가는 그녀들의 이야기~~ 장애인

이전에 그녀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고, 꿈이 있고, 하고자 하는 많은 일들이

있음을 그녀들은 말한다.



이번이 6회째인 정기공연의 주제는 '장애여성의 독립'이란다. 라디오 방송

사연을 통해 만나는 그녀들의 이야기는 가슴 뭉클하고 애잔하고 그리고 당당했다.

비록 느리지만 그녀들은 자신의 독립적 삶을 위해 노력하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이 연극이 온몸으로 와 닿았던 것은 그녀들이

겪었던 일상들을 극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가족들이 휴가 가는데 장애로 인해 홀로

맞은 생일, 활동보조인과의 소통의 문제, 장애부부의 육아 이야기 등은 그대로

그녀들의 삶을 보여주었고 그녀들이 바라는 삶과 미래를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들의 사연은 결코 슬프거나 눈물 나는 사연만은 아니었기에 난 열심히 박수를

쳤고 그녀들의 당당한 삶에 더욱 힘차게 박수를 보냈다.   


 

휠체어를 타고 공연에 열연한 한 배우는 말한다. '부디 저희의 공연을 보실 때 

저희의 몸에 감동받으시지 마시고 저희의 연기력에 무언가를 받으셨으면

합니다.'.... 그녀의 말처럼 난 그녀들의 연기력에 무언가를 받았던 것 같다.

예전같으면 눈물이 앞을 가려 많이 울먹였겠지만, 있는 그대로의 그녀들의 삶을

당당히 살아가는 그녀들에겐 눈물보다 박수가 먼저임을 알았던 것이다.

'독립적인 삶'은 내가 주체가 되고 내가 스스로 결정하는 삶이다.

흔히 말하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오직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가는 독립은 아니다.

우리는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이든 보이지 않든 타인의 도움을 받으며

서로에게 기대고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들의 독립은

참으로 당당하고 희망적이었다.    



그녀들의 무대는 그 자체로 역동적이었다. 휠체어를 탄 그녀들은 그녀들의

방식으로 무대를 압도하며 장악했다. 뭉클한 감동과 희망이 내 가슴에 빵빵히

들어차도록... 내가 관람하던 옆에는 다른 공연에선 볼 수 없는 장치가 있었다.

처음엔 그 장치가 무엇인지 몰랐다. 공연이 시작되면서 나는 무릎을 쳤다. 아~~~!!!

혹여 그녀들이 전달하는 언어를 잘 못 알아들을 경우를 대비해 준비한 대사를

자막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처음엔 흘낏흘낏 나는 그 자막을 보며 공연을 봤었다.

그러다 무대에서 열심히 공연 중인 그녀들에 집중하면서 자막 없이도 그녀들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가슴으로 그녀들의 언어가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공연이 다 끝난 후에도 차마 자리에서 일어설 수 없었다. 마지막까지 그녀들에게

열렬한 박수를 보내고 돌아나오는데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 이렇게 표현할 수

있구나, 이렇게 보여줄 수 있구나... 공연을 보러 온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애인

이거나 나와 같이 장애 가족인 경우가 많아 보였다.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소망이

생겼다. '장애인은 이런 생각을 한다'고 힘주어 말하는 것보다 연극 한 편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까...    



그녀들은 말한다.

'충분히 느리고 유쾌하고 까칠하게 살아가리라.'고... 그녀들의 대사 하나하나가 

명언처럼 들렸던 것은 그만큼의 공감 때문일까? 그녀들의 대사 중에 기억에 남는

대사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는 충분히 느리다. 그러나 이 시대는

그보다 더 느리게 변화하고 있다' 라는 의미의 말이었던 것 같다. 느리다고 다 나쁜

것일까? 빠르기에 놓치고 가는 것 또한 많지 않던가? 조금 느려도 유쾌하고

까칠하게 살 수 있다면 그 삶 또한 의미롭지 않은가? 일전에 만났던 '혼불'의 작가

최명희님의 말처럼 '그렇게 빨리 쓰고 많이 써서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는 말이

덧붙여 떠오른다.    




난 현대를 살아가기엔 충분히 느리고 어리숙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런 나도

살아가야 할 존재의 이유는 있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만난 그녀들을 통해 더 많은

생각과 희망을 현실적으로 그려보았다. 비록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그녀들이

보여주었던 연극을 통해 충분히 느리고 유쾌하고 까칠하게 살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할 숙제를 만난 것이다. 그녀들의 공연은 충분히 느리고 유쾌하고 까칠했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고 감동스럽고 희망적이었다. 내가 그녀들을 만나며 느

꼈던 이 공감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2010.11.26  장애인여성극단 '춤추는 허리'의 [거북이 라디오]를 관람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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