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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에 담은 심상
최참판댁에 다녀오다
-토지의 배경을 찾아가다
by
최명진
Nov 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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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나무 끝에 매달려 대롱대롱하고 있다.
마음이 급해졌다.
한 주 전만 해도 얇은 옷 하나가 가능했는데
일주일 사이에 두 겹을 입어도 뚫고 들어오는 한기를 막지 못하다니...
가을은 이제 존재를 알리는 정도로만 하고
황급히 지나가려나보다 싶었다.
내 머릿속에서 배회하는 영상 하나,
최참판댁에서 만났던 주렁주렁 매달린 감들~~!!!
더 늦기 전에 가서 보고팠다.
예전엔 겸사겸사로 자주 들렸던 곳인데
몇 년 사이 추억으로만 기억되는 그곳.
남편에게 최참판댁에 감이 보고 싶다고 툭 던졌다...
감사하게도 반응이 오네...
우리가 출발했던 지난 일요일은 정말 날이 싸늘했다.
해가 한 번도 비치지 않고 무겁게 내린 잿빛 하늘이 우리를 내려다볼 뿐.
그런 까닭인지 한낮인데도 기온은 뚝 떨어져 몸이 오그라들었다.
그래도 보고픔을 막을 순 없었다.
지리산 자락을 도는 길을 따라 차를 달리며 섬진강과 화개장터를 지나
그토록 보고팠던 최참판댁에 이를 수 있었다.
아~~ 추억 속의 그곳은 아니네...
몇 해가 지나서인지 제법 정돈이 되고 넓어진 느낌이었다.
내 머릿속엔 토지의 세트장 곳곳에 매달린 감이 선명했는데...
때 맞춰 대봉시 축제가 열려 감은 곳곳에 흔전했지만 내가 보고팠던
풍경으로는 아니었다.
예전에 갔을 때도 이맘때쯤이었나.
잎이 우수수 떨어진 나무에 감들이 옹기종기 모여 얼마나 예뻤던지...
그래도 풍경이 주는 힐링은 좋았다.
예전에 보았던 토지를 떠올리며 세트장을 돌았다.
한혜숙, 최수지, 김현주가 서희 역을 했었다고....
내 기억에 서희는 최수지였다.
'찢어 죽이고 말려 죽일 테야....'
독한 말을 내뿜으며 일어서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그녀...
기억 속에 가물한 그 풍경과 눈 앞에 펼쳐진 황금들판.
이 풍경이 보고팠는지도 모르겠다.
세트장을 돌다가 최참판댁네로 올라갔더니 마침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뜻밖의 득템이었다.
누군가가 놓은 박스를 든
아직은 능숙하진 않지만 설 익은듯한 공연도 좋았다.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성장해나가지 않던가.
있는 에너지와 응원을 담아 열심히 박수를 보냈다.
다시 내려와 세트장을 돌다가 소를 만났다.
예전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 중에 한 분이 [암소의 눈]이란 시집을 냈던 기억이 났다.
그 시집을 접한 뒤론 소를 보면 가만 다가가 그들의 눈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어쩜 이리도 깊고 순하고 어여쁘게 생겼는지...
이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나를 바라봤다가
고개를 돌리는 소.
그의 눈을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힐링이 되는 느낌이었다.
내가 담고 싶었던 한 컷의 사진이 이런 풍경일까?
유일하게 감나무와 풍경이 어우러진 컷 하나를 건졌다.
이것으로 족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다행이다.
비슷하게 담고 싶었던 것을 하나라도 담았으니...
그 척박한 시절을 살아보고픈 마음은 아니나
그 시대를 통해 지금의 내 삶을 돌아보고픈 마음이다.
돌아나오면서 박경리 선생의 동상을 만났다.
'당신 같은 분이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내 마음이었다.
문득 더불어 떠오른 박완서, 최명희 작가~~!!!
차마 난 그릴 수도 없는 그 심도 깊은 작품을 쓰신 그분들에게
내 경외와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
깊어가는 가을, 최대한 내려앉은 잿빛 가을 하늘,
그 아래로 차를 달리는 우리들.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깊은 성찰로 주어진 내 삶을 열심히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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