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신버릴라 아지매였다.
고백하건대 나는 '신버릴라 아지매'였다.
신버릴라가 뭐냐고?
유명한 동화 '신데렐라'를 패러디한 내 스스로의 별명이었다.
아무리 우아하게 걷고 싶어도
축지법을 쓰듯 순간에 저만치 가버리는 녀석 앞에서 난 신버릴라일 수밖에 없었다.
차가 달리는 도로에 아무런 위험 감지 없이 뛰어드는 녀석 앞에서
나는 신버릴라가 될 수밖에 없었다.
'신버릴라'~~!
신을 버리고 뛰어간다는 소리이다.
아들 덕분에 난 뾰족구두를 신을 수 없었다.
어여쁜 단화를 신을 수도 없었다.
손 잡기를 거부하는 녀석과 외출을 할라치면
난 운동화 끈 단단히 매고 달릴 준비를 하고 나서야 했다.
그렇게 난 처절한 신버릴라가 되었다.
아들의 안전을 위한 신버릴라~~!!!
눈을 뗄 수 없었던 그날들
며칠 전에 사무실로 가족지원 여행 계획서를 내기 위해
아버님과 장애자녀가 함께 왔었다.
녀석은 초등학교 1~2학년쯤 되었을까?
눈이 참으로 맑고 깊은 아이였다.
피부도 곱고 귀공자처럼 참 어여쁜 아이였다.
아빠가 상담실에서 신청서를 작성하는 동안
아이는 사무실에서 우리 선생님들과 함께 있었다.
그 녀석....
어찌나 빠른지....
순식간에 주변의 물건을 흐트러놓는 것이다.
순간 내 뇌리를 스쳤던 아들의 영상.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던 아들의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언제쯤이면 기다릴 수 있을까?
자신이 하고픈 컴퓨터를 실컷 하고서도 끄자는 말 한마디에
대성통곡을 하며 뒹구는 녀석.
당장 하고픈 것을 하지 못하면 소리 지르며 펄쩍펄쩍 뛰는 녀석.
내가 낳은 자식이언만 눈맞춤도 인색한 녀석.
자신이 필요할 때만 눈 맞춤하며 요구하는 녀석.
그 아이가 내 아이였다.
잠시도 가만 앉아 있지 않으면서도
녀석은 그림을 그렸고, 책을 보았고, 글을 썼다.
노래도 불렀다.
내 속으로 낳았는데도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었다.
정말 이 녀석은 저 먼 별나라에서 온 '어린 왕자'란 말인가.
이 녀석에게 기다림이란 것이 가능할 시간이 올까.
적은 쪽잠에도 에너지 충전하여 지치지 않고 돌아다니는 녀석 덕분에
난 늘 천근만근의 몸을 지고 다녔다.
그래도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아무리 장애가 있다고 해도 그냥 모든 것을 다 들어줄 수는 없다.
가능한 것과 가능하지 않은 것을 알려줘야 했다.
위험한 것과 위험하지 않은 것들을 알려줘야 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과 다음을 기약해야 하는 일을 알려줘야 했다.
어떻게 약속을 가르치고 기다리는 것을 인식하게 할 수 있을까?
끊임없는 고민은 이어졌다.
정신없이 자료를 찾으며 생각에 생각을 더했다.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녀석이 관심 있는 것부터 출발해야 한다.
녀석이 인식할 수 있는 것으로 추상적 시간을 보여줘야 한다.
다양한 방법들이 머릿속에서 부유물처럼 떠다녔다.
이제 실천해야지.
아무리 장애가 있다 해도 그들도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타이머를 이용해 약속을 가르치다.
시각우선적인 아들의 강점을 이용하자.
아들의 손을 잡고 마트에 가서 아들이 원하는 타이머 고르도록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해바라기, 꼬꼬닭, 계란 모양의 타이머가
그렇게 우리의 곁을 스쳤다.
물론 이 이외도 많은 타이머가 우리 아들과 인연을 맺고 떠났다.
약속한 시간에 타이머가 울리면 끄기로 사전예고를 한 후
녀석은 컴퓨터를 할 수 있었다.
약속은 찰떡같이 했지만 지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소리가 나면 화를 내며 타이머를 내동댕이치기 일쑤였고
그렇게 충실한 타이머는 장렬히 전사하게 되었다.
그래도 시작은 했으니 지속해야지.
녀석의 손을 잡고 다시 마트에 가서 타이머를 고르고
그 타이머에 자신의 컴퓨터 시간을 할애받은 아들은 다시 분개하기 여러 번.
어느 순간 녀석의 분노가 서서히 사그라지고 있었다.
약속을 몸으로 체득하다.
감사하게도 절대 약속이란 개념을 알 수 없을 거란 절망을 경험했던 그때,
나는 아들의 발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아들뿐만 아니라 나 역시도 아들의 발전을 눈으로 확인하는
시각우선자였다.
아들이 약속에 대해 조금씩 인지를 하기 시작하면서
밖에 나가서도 내가 부르는 소리에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여전히 아들은 앞서 가는 성향이 있고
순간에 폴짝이며 상동행동을 하지만
기다림을 인지시키면 지키려는 행동을 몸으로 보여준다.
감사하고 감사할 일이다.
느리지만 아이들은 발전한다.
느리지만 아이들은 발전한다.
다만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이 조급해 때론 그것을 보지 못할 뿐이다.
수도 없이 녀석을 믿고 앞서 보내고,
엄마 목소리를 듣고 돌아서기를 바랬지만
무정히 인파 속으로, 자연 속으로 사라지던 녀석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경찰서 신고를 반복했던 것 같다.
물론 그 후로도 간헐적으로 비슷한 일이 생겼지만
예전보다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금은 늘 대여섯 발자욱 먼저 앞서지만 기다릴 줄도 알게 되었다.
신버릴라 아지매는 이젠 신을 버릴 일이 많지 않다.
앞으로 우아한 신발을 신을 수 있길 고대할 뿐이다.
사전예고와 칭찬으로 발전을 독려하면서...
(***그림들은 모두 아들의 작품이다.
책을 읽고 나서 맘에 드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