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연의 고리를 끊다

-청미래덩굴의 추억

by 최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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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아 시부모님 산소에 갔다.

산소에 가는 일은 그다지 내게 부담이 되지 않는다.

덕분에 산에도 가고 가까운 바다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다지 높은 곳에 있지 않으니 오르는 수고로움도 별로 없다.

무엇보다도 산소에 가면 만날 풍경들이 궁금해 난 마다하지 않는다.

이 역시도 시부모님이 주신 선물이 아닐까...


채도가 그리 높지 않은 겨울의 풍경.

또렷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는 게 겨울의 특성이 아닐까.

그럼에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다

드디어 발견~~~!!

부석부석한 겨울 풍경 한편에 등처럼 붉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붉은 청미래덩굴 열매였다.


이 겨울, 나름 포인트를 잡아주는 청미래덩굴 열매.

덤불을 헤치고 그들을 담으러 다가갔다.

가까이 잡을 수 있는 것은 누군가의 손을 탄 것인지 몇 개 열려있지 않다.

그래도 반가운 마음에 그들을 담는다.

잠시 방심하는 사이 날카로운 그들의 까시가 내 살갗을 스쳤다.

"아야~~~"

소리와 더불어 떠오른 어린 시절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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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2학년 때 겨울방학이었다.

그땐 아침밥을 먹고 나면 하는 일이 동네 아이들이 휘파람 소리를 내며

모여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가는 것이었다.

나무도 하고 더불어 놀기도 하는 시간이랄까.

그땐 거의 모두가 나무를 때는 시기여서 나무를 하는 것은

우리들의 귀한 역할이기도 했다.


오빠들을 필두로 서너집이 모이면 예닐곱 명이 되었다.

우린 화력이 좋고 연기가 나지 않는 좋은 삭정이를 찾아 가까운 산이 아닌

조금 더 먼 산을 찾아가곤 했다.

그날도 좋은 땔감을 위해 조금 더 들어갔던 것 같다.

나이가 어리다고 내겐 낫도 주지 않아 난 내 키높이에 맞는 삭정이를 찾아

손으로 힘차게 끊어내어야 했다.


누구에게 뒤지는 것을 싫어한 나는 바지런히 손에 닿는 삭정이를 찾아

열심히 꺾었고, 또다시 삭정이를 찾아 헤매다가 내 눈에 들어온 삭정이..

안타깝게도 그 삭정이는 멍감(청미래덩굴을 우린 이렇게 불렀다) 덩굴에

휩싸여 있었다. 그러나 삭정이가 너무 탐스러워 난 오빠에게 낫을 빌려

과감하게 그 멍감덩굴을 베어내었다.

안타깝게도 그 덩굴은 낫에 쉽게 베이지 않고 줄기를 타고 올라와

내 두 번째 손가락을 긋고 말았다. 순간에 치솟는 붉은 피~~!!!



***삭정이: 살아 있는 나무에 붙어 있는, 말라 죽은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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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비명소리에 놀라 달려온 오빠가 내 손을 보고 놀라 소리쳤다.

깊은 산중에 무엇이 있을까?

다행히 소나무의 속피를 다친 부위에 감으면 피가 멎는다는 얘길 들은

다른 오빠가 소나무를 낫으로 벗겨 속피를 까서 내 손에 동여매어주었다.

날은 춥고 다른 방법이 없었다.

아직 나무가 끝나지 않았기에 오빠는 내게 먼저 집으로 가라고 소리쳤다.


손을 붉게 물들인 피를 보며 겁에 질린 나는 그렇게 몇 번을 넘어지면서

산을 넘고 내를 건너 집으로 돌아왔었다.

깜짝 놀라 내 상처를 보신 엄마가 사랑방에 세 들어 사시는 아저씨께

담배 한 개비를 가져와 담배가루를 내 손에 붙여주곤 헝겊으로 둘둘 싸매셨다.

치료는 그것으로 끝났다. 다른 약도 없었다.

시간이 흘러 그 상처는 아물었고 평생을 함께 할 커다란 흉터가 남았다.


가끔 사람들이 손이 예쁘다며 내 손을 보다가 커다란 흉터에 놀라 묻곤 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나무를 하다가 난 영광의 상처라고 하면 사람들이 다시 놀란다.

내 또래 친구들도 그렇게 나무를 일찍 한 적은 없다며...

억척스럽게 방학 내내 나무를 다녔던 내 추억을 얘기하면 사람들은

혹 꾸민 이야기가 아니냐고 한다.ㅎㅎ

나의 나무하기는 중3이 되어 마쳤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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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살갗을 스친 청미래덩굴을 보며 혼잣말을 했다.

"어머나.... 잊었던 추억을 불러주네..."

생애 처음으로 죽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죽을까 봐

엉엉 울며 집으로 달려왔던 그때의 내가 떠올랐다.

제법 많은 피를 흘렸지만 난 죽지 않았고 상처는 아물었었다.


그 귀한 인연 덕분에 난 멍감덩굴(청미래덩굴)을 잊을 수가 없었다.

우연히 식물도감을 좋아하는 아들 덕분에 책을 보다가 우리가 멍감이라 불렀던

그 덩굴이 청미래덩굴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덕분인지 산에만 가면 꽃 다음으로 가장 먼저 눈에 뜨이는 것이 바로

청미래덩굴이었고 그 열매였다.

채도가 낮은 겨울산에서 유난히 돋보이는 붉은 청미래덩굴 열매...


옹기종기 모인 그들을 보며 처음엔 '사랑의 열매'를 떠올렸었다.

파아란 설익은 열매를 어쩌다 따서 입에 넣으며 떫은맛이 번졌던 기억이 난다.

내 손을 아프게 했던 귀한 인연 덕으로 난 붉디붉은 청미래덩굴 열매를 사랑하게 되었다.

자기를 해치려 하는 사람에게 방어를 했을 뿐일 텐데...

처음으로 죽음을 연상케 했던 청미래덩굴의 악연은

사랑의 열매를 떠올리게 하는 사랑스러운 열매로 내게 보답을 해줬다.

덕분에 끊게 된 악연의 고리...


다음에도 산에 가게 되면 마른 가지 사이로 옹기종기 모인 그들을 반겨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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