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함이 불러 온 참사

-소중한 눈에 대한 소고

by 최명진


살면서 나름 믿는 빽이 있다면 뭘까?

부모님의 구존, 내 소중한 가족, 친구...

막상 떠올리려니 사람이 역시 최고인가 보다.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잘 하지도 않으면서 그들을 무심결에

떠올리는 나를 보며 이기적이란 생각을 한다.

과연 그들도 나를 믿는 빽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몸이 천 냥 이면 눈이 구백 냥'이란 광고가 생각난다.

눈에 대해서 그렇게 깊이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었던 나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내 뇌리에 깊숙이 박힌 이 광고 문구가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말을 인지하고 공감했다는 것일 게다.

왜 그리도 요즈음은 그 광고가 내 가슴에 화살처럼 꽂히는지....



남편은 시력이 좋지 않다.

그래서 나름 안경도 쓰고 몇 해 전부터는 다초점렌즈로 바꾸었다.

유난히 시력에 좋지 않은 습관에 대해 과민한 시어머니처럼 굴었던

남편이 귀찮았었다.

너무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저편에 깔려있었다.

'그렇게 챙기는 사람이 자신의 눈은 왜 그래....'

하며 남편의 걱정스러워하는 마음을 귀찮음으로 밀어버렸다.



그런데 정확히 작년부터였던가.

갑자기 흔들리는 글씨, 그 전에 잘 보이던 글씨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때의 충격이란.

고등학교 2학년까지 양쪽 시력이 2.0이었던 나는 나름 시력에 대한

자부심과 무심함이 함께했었던 것 같다.

그 좋은 시력으로 공부를 더 하지 않는다고 혼을 내시던 선생님이

어찌나 야속하던지.... 공부는 나도 잘 하고 싶다 구용... 하면서 삐죽거렸는데.

처음엔 피로로 인한 일시적인 증상으로 알았다.

그러나 그 증세는 더 나아지지 않았을뿐더러 더욱 심해졌다.



아들의 단추가 떨어져 바늘귀에 실을 꿰려 하는데 자꾸 엇나갔다.

마치 무슨 코미디를 연기하는 것처럼 나의 손길은 바늘귀를 스쳐 지나갔다.

세상에.... 이렇게 빨리...!!!

옆에서 지켜보던 아들이 마지못해 바늘귀를 꿰어주면서 걱정을 했다.

'어쩜 이렇게 불편하니... 세상의 반이 가린 느낌이야.'

환경을 조금 바꾸면 나아지려나 했지만 여전히 글은 나를 거부하고 있었다.

농담처럼 얘기하던 13포인트가 아니면 짜증이 절로 일 것 같았다.

남편은 옆에서 덤덤한 표정으로 '노안'을 얘기했다.



몇 해 전 글로 인연을 맺은 언니 덕분에 호주에 간 일이 있었다.

그 여행 기간 중에 가장 인상적인 추억을 고르라면 그곳에서 만난

구순이 훨씬 넘으신 언니의 어머님이라고 말하고 싶다.

구순이 넘으신 나이에도 안경을 쓰지 않은 채 옛날 문고판형의 작은 책을

열심히 읽고 계셨었다.

라식 수술을 하셨었다나....

의자에 앉아서 여유롭게 책을 보시는 모습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나도 저리 나이 들고프다고 말했었는데..



유난히 달리는 차 안에서 집중이 잘 되어 나는 여행 중에 늘 책을 끼고 다녔었다.

그럼 요술처럼 평일에 읽지 못하고 답답한 정체를 보이던 독서능력은

바람을 가르는 속도를 내며 끝을 향해 달리곤 했었다.

그 쾌감이란...!!!

내 비록 나이 들어도 책과 더불어 평생의 벗이 되리라 다짐을 했는데

이렇게 무참히 버림을 당하다니...

나의 오만함에 확실한 경계선을 그어준 노안....



글씨에 대한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내 글자 포인트는 커졌고,

큰 글씨를 선호하게 되었다.

8,9 포인트로 유인물을 나눠주면 내용에 상관없이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귀가 어두우신 어른들이 당신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을까 봐 크게 말씀하시는 것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순간이 된 것이다.

사후약방문이라고 했던가.

눈에 대한 소중함을 절로 느끼는 요즘이다. 아, 구백 냥 짜리인데....


아직 안경을 쓰지 않으시는 울 친정부모님이 다시 보인다.

건강검진에서 안과 방문을 처방한 아들의 결과서가 눈에 자꾸 들어온다.

평생의 재산을 잘 아끼고 소중하게 써야 함을 느낀다.

이는 나이에 기인한다 하니 나름 보조역할을 하는 안경에 의존해야겠지만

더 나빠지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겠다.

요즘 부쩍 떠오르는 나에 대한 소고,

오만함이 가져다준 참사로다... 이번 참에 소중히 사용하고 아끼자....!!!





작가의 이전글연꽃처럼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