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전나무숲길을 걷다

-오대산 월정사의 전나무길

by 최명진




흔히 가족을 '모빌'에 비유한다.

모빌 중 하나만 건드렸을 뿐인데 모빌 전체가 뱅그르르 돌기 때문이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장애가 있으므로 인해 가족 구성원 모두는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로 내가 자주 쓰는 말이다.

비단 장애가족뿐일까?

우리 모두의 삶은 인접한 환경에 서로서로 영향을 끼치며 받는다.

다만 그 삶이 조금 더 다른 장애가족이 눈에 들어올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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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장애는 우리의 삶을 많이 바꿔놓았다.

다른 이들에게 뒤질까 봐 죽어라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삶을 돌아보게 했다.

공부가 가장 중요하다는 인식을 바꾸어 놓았다.

공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건강이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함을

아들은 몸과 마음으로 보여주었다.

아들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다른 이들의 행진에 뒤처질까 봐

열심히 앞으로만 나가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공부가 중요한 이유는, 알아야 가능한 일들이 있음이다.

건강이 중요한 이유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기본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가족이 중요한 이유는, 더불어 행복 나눔을 하면서 삶의 의미를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아들의 장애는, 우리가 앞으로 아무리 열심히 달려가고자 하여도 아들이 빠진 상태로

온전한 가족일 수 없기에 함께 갈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아무리 바빠도 바늘 허리 맬 수 없는 것처럼

가족의 행복은 더불어 함께라야 가능함을 우린 그렇게 배웠다.





























아들의 장애로 인해 우리가 실천했던 것 중의 하나가 여행이었다.

에너지 넘치는 아들과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꽃을 좋아하는 아들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그 다양한 스스로의 질문에 '여행'이란 것을 떠올렸던 것이다.

처음엔 아주 가까운 곳부터 시작해서, 서서히 반경을 넓혀 더 먼곳으로

그렇게 우리의 여행은 이어졌다.

물론 이 여행엔 남편과 큰 아들의 역할이 지대했음을 말하고 싶다.




방학을 한 아이들,

그러나 방학이 온전한 방학이 아닌 고등학생 두 아들.

그 아들들과 휴일을 이용해 우린 그렇게 떠나기로 한 것이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남편의 눈에 우연히 들어오게 된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의 전나무숲길.

'좋은 것은 늘 가족과 함께'라는 아주 건강한 마음을 가진 남편 덕분에

우린 일요일 새벽 홀연히 어둠을 뚫고 길을 달리게 되었다.


전나무숲길을 새벽에 걸으면 좋다나...

그 숲길을 청소하는 스님들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남편의 변이었다.

어둠 속에 라이트를 등대로 삼아 앞으로 나아가던 우리에게

서서히 밝아오는 여명은 그 자체로 경이로웠다.

비가 스친 월정사 아침을 만난 우리들.

마침 우산을 들고 전나무숲길로 향하시는 스님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풍경 자체가 힐링이 되었음을...




남편이 그토록 우리에게 보여주고팠던 길을 우린 걷고 있었다.

전나무숲길 옆으로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가 어찌나 청아하게 들리던지...

오랜 세월을 머금은 전나무의 웅장함과 새벽의 여운을 깨우는 계곡의 물소리.

물소리에 이끌려 계곡 쪽으로 가니 옅은 안개가 스멀스멀 오르고 있었다.

신선이 혹 다녀간 것일까?

그윽한 풍경에 마음을 빼앗겨 자리를 뜨지 못한 채 귀를 기울였다.

내 발소리에 숲의 아침을 방해할까 싶어 발걸음조차 조심스럽다.



아들은 이 마음을 알고 있을까?

충분히 느끼고 함께할 수 있길 바라는 가족의 마음을.

홀연 성큼성큼 전나무숲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아들을 따라 걷다 보니

시야가 더 선명해지고 또 다른 방문자들이 풍경 안으로 들어왔다.

천근보다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려 오길 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앞을 스쳐 앞으로 나아가는 세 남자의 모습에 절로 '감사'란 단어를 떠올렸다.

우리 이렇게 서로의 사랑과 마음을 나누고 살아갑시다....!!!
































길지 않은 전나무길을 돌아 다시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 사이 안개는 걷히고 풍경이 눈 앞으로 후욱 다가섰다.

선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인간계를 만나는 느낌이다.

선계로 들어섰던 울 가족은 다시 인간계로 돌아왔다.

마주 보는 얼굴에 미소가 흘렀다.

어쨌거나 출발했으니 이 좋은 풍경을 만날 수 있음에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사랑을 행동으로 보여준 남편 덕분에 아침이 행복했다.

밝아오는 아침에 서로를 바라보며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음에

가족이라는 모빌이 기쁘게 흔들리고 있었다.